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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혐오자'에서 '구단 공식 팬클럽 부회장'까지, 축구 보는 한 청년의 이야기.

작성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2024-05-07 10:30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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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된걸 환영합니다! 페냐 아틀레틱 클럽 코리아!"

 

'축구 혐오자'에서 '구단 공식 팬클럽 부회장'까지, 축구 보는 한 청년의 이야기. -cboard


 

이 한 문장이 아틀레틱 클럽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걸 본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지난 9년간 팬으로서 활동한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함의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어떤 훌륭한 감독을 데려와서 엄청난 영화를 만들더라도 그때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살며 매주 새벽에 일어나서 아틀레틱 클럽과 서포팅 하는 다른 팀들 경기를 보고 주말 오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경기를 보러 갈 만큼 충실한 축구팬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축구를 싫어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건 좋아했는데 신기하게 운동을 배우는 건 싫어했다. 누구나 가는 태권도장도 가지 않았고 당연히 특공무술이나 검도 같은 운동하는 학원들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어떤 운동이라도 배우길 원하셨는지 동네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축구부에 나를 등록했다. 
 
당연히 운동을 배우기 싫어했으니 축구부에서도 겉을 맴돌았다. 하려는 의지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운동 신경이 좋아서 조금만 배워도 곧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축구부 내에서 연습경기할 때 공이 저 멀리 가있으면 옆에 있는 친구와 운동장의 모래로 모래놀이하기 바빴고 공이 오면 자동문 열리듯이 쉽게 뚫리거나 걷어내기만 바빴다.  원래 축구에 대해 관심도 없었는 데다 잘하지도 못하니 축구에 대한 감정은 날로 악화되었다. 나름 팀 스포츠라고 대회에 나가서 아쉽게 떨어졌을 때는 팀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축구부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운동장 사용문제 때문에 해체 되었고 나는 다시 축구에 관심도 없고 어느 관련도 없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갔다. 간간히 머릿수 채우려 반대항 축구경기에 나가서 볼만 걷어내는 흔하고 흔한 하는 것 없는 수비수 역할만 맡았다. 
 
이런 상황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계속 되었다. 방학기간에 사설 영어캠프에 간 적이 있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피파 트레일러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뭔가 모를 반감이 저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축구에 대한 반감이 쌓였던 탓일까 나도 아직까지 이유는 모르겠다.
 
이렇게 축구를 싫어하던 내가 어떻게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중학교 3학년때 우연히 본 축구경기가 그 시작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나는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 무더운 8월의 세비야를 둘러본 뒤 호텔 방에 돌아와 씻고 티브이를 틀었더니 어떤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상대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빨간색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팀이었다. 당연히 나는 좋든 싫든 네이마르, 수아레스 그리고 메시라는 유명한 선수들이 바르셀로나에서 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르셀로나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다.
 
경기를 보던 중에 갑자기 빨강 하양팀 선수가 하프라인에서 슛을 때리더니 그대로 골문을 흔들었다. 뒤이어 그 팀의 다른 선수가 해트트릭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는 그 경기에서 4대0으로 처참히 무너졌다.
 
이 경기를 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 최고의 팀이라고 알려진 바르셀로나가 소위 말하는 듣보잡 팀한테 이렇게 크게 무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경기를 본 뒤 나는 바르셀로나를 이긴 팀을 찾아보았다. 그 팀의 이름은 아틀레틱 클럽이었고 신기하게도 지역 출신의 선수들만 기용한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정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라리가에서 한 번도 강등당한 적이 없고 바르셀로나 다음으로 스페인에 가장 많이 국왕컵을 들어 올린 팀이었다. 아틀레틱이 정책과 역사로 쌓아 올린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은 나를 순식간에 매혹시켜버렸고 어느 한국인의 아틀레틱에 대한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축구 혐오자'에서 '구단 공식 팬클럽 부회장'까지, 축구 보는 한 청년의 이야기. -cboard
그 경기는 2015년 수페르코파였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사진까지 찍어놨을까. 우연하게도 필자의 최애 선수 아리츠 아두리스가 찍혔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팀들 중에서도 왜 아틀레틱 클럽일까?
 
본래 사람은 누구나 이기고 싶어한다. 승리에 대한 본능은 스포츠에도 적용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한 팀을 응원하기 마련이다. 당장 리그의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들만 보더라도 메시와 호날두라는 슈퍼스타와 함께 스페인의 패권은 물론 전 세계의 왕좌를 놓고 경쟁하는 팀들인 만큼 라리가 내에서 가장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들이다.
 
그 당시 기준으로 두 팀의 팬들은 언제나 경기에서 이기고 언제나 우승하는 팀을 보았을 것이다. 팀이 경기에서 패배할지, 강등당하는 것은 아닐지, 보강은 재대로 할지 걱정 없이 그리고 팀 소식은 항상 누군가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가져다주는걸 읽으며 정말 편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모든 이점을 뿌리치고 아틀레틱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아틀레틱을 응원하는 혹은 응원하게 된 이유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홍대병이 좀 있는 것 같다. 그 홍대병의 기원은 어릴 때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언제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언젠가부터 남들이 모두 따라 하고 좋아하는 것보다는 나만 아는 것에 손이 가기 시작하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내 모습이 멋져 보여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냥 날 때부터 반골기질이 강했던 걸까?
 
아무튼, 이런 홍대병 기질이 나를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도 아닌 아틀레틱 클럽으로 이끈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유로는 내가 아틀레틱 클럽에 입문하던 시기에 잘하던 팀의 모습을 봐서 그런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내가 입문한 2015년에는 지금 감독인 발베르데 감독의 두 번째 재직 시기였는데 그 시즌을 5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게다가 아리츠 아두리스가 노익장을 발휘하여 30대 중반에 리그 20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면서 나의 최애 선수가 되었다. 입문하면서 찾아본 대로 자신들만의 정책을 유지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응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시즌에는 발베르데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장기적인 플랜의 미흡함 때문인지 리그 성적도 떨어지고 유로파도 32강에서 키프로스의 아포엘에게 허망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발베르데 감독에게 실망을 많이 했고 다음시즌은 이것보다는 잘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밑바닥은 따로 있었다.

발베르데 감독은 16-17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 자리는 B팀 감독이자 구단 레전드인 호세 앙헬 시간다가 맡았다. B팀 감독으로 있으면서 팀을 3부 리그로 강등시켰지만 B팀이 2부에서 살아남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에 시간다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나쁘지는 않았다. 시즌이 개막한 뒤, 경기를 지켜보면 볼수록 팀의 순위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유로파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기대보다 성적을 잘 냈지만 아틀레틱을 응원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경기를 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경기를 보면 감독이 원하는 바를 모르겠고 그저 어영부영 매 라운드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수험생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차피 성적도 안 좋은데 응원을 잠시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운영하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틀레틱을 응원하기 시작한 다음 한 시즌이 지난 16-17 시즌, 그 당시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페이지라는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하던 나는 소식을 전달해 주시는 다른 유저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팬들과 소식을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당시 아틀레틱 소식을 퍼오던 중요한 소스가 영문 팬 사이트였기 때문에 기사를 번역하며 수능 대비 영어공부도 하고 서포팅도 하고 일석이조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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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 지금은 트위터로 옮긴 상태이다.


그렇게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축구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남는 틈에 기사를 번역하고 아틀레틱과 관련된 이슈가 있으면 축구 커뮤니티나 다른 페이지에 방문하여 얼굴도 좀 비추면서 팔로워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활동하다 보니 나름 페이스북 축구팬들 사이에서 아틀레틱의 이름도 알리고 여러 연합체에 들어가며 인맥도 쌓게 되었다.

고3 생활이 중반으로 흘러갈 즈음, 팀을 16위로 추락시켰던 시간다는 시즌이 끝나고 떠나갔다. 셀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아틀레틱의 광인 비엘사의 수제자인 에두아르도 버리소가 팀에 부임했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베리소가 비엘사의 기적을 다시 한번 보여줄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베리소 축구는 기대와 다르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팀은 저번 시즌처럼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결국 시즌 중반에 경질되고 말았다.

그다음 감독으로 부임한 가리타노 감독은 팀을 잘 수습했고 팀을 유럽대항전 문턱까지 올려놓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은 리그에서만 있었던게 아니다. 가리타노 감독은 신기하게 토너먼트에서 강했고 팀을 2년 연속이나 국왕컵 결승에 올려 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같은 해에 결승을 두 번이나 치르게 됐지만 그 상대가 바르셀로나 그리고 최대 라이벌 레알 소시에다드라는 점이, 110년 만에 이뤄지는 국왕컵 바스크 더비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가리타노 감독은 두 결승전에서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비록 군 복무 중이라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약 40년 만에 국왕컵을 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고 가리타노 감독이 그 기대를 깨트려버렸지만 팬으로서 다시 한번 아틀레틱에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던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

군 전역을 하고 군적금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이 많았다.

교환학생 자금에 보탤지 아니면 겨울 방학 때 스페인 현지를 방문할 것인지 두 선택지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이성적으로는 교환 학생을 도전하는데 보태는 게 맞았겠지만  내 감성이 강했던 걸까 내 이성이 나약했던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1월에 출발하는 스페인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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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유럽으로 실어주었던 비행기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전날 기왕 빌바오 현지까지 가는데 선수들의 사인은 무조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틀레틱 레딧, 트위터를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빌바오까지 날아가는 나의 사정을 설명하며 사인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지 수소문했다.

인터넷의 아틀레틱 팬들은 한국에서 방문하는 나의 이야기에 놀라워하며 훈련장 앞에서 훈련 전이나 훈련 후에 기다리면 선수들이 나오거나 들어가면서 사인을 해준다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나는 훈련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빌바오 방문 계획을 세워둔 뒤 스페인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고 있던 중 트위터 DM 알람을 받았다.
DM 올 사람이 없는데 무슨 연락인가 싶어 트위터 어플을 켠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바로 아틀레틱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DM이 온 것이었다.

사인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래서 사인을 구해다 주려고 하는데 이름과 어쩌다 팬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공트 관리자와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았다. 레알 전을 보러 산마메스에 간다고 말하니 경기 전에 홍보팀 관리자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꿈만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빌바오로 향했다.

빌바오에 도착한 당일 다행히도 훈련일정이 오후에 잡혀있어서 여유롭게 짐을 놓고 점심을 먹고 훈련장 앞으로 향했다. 혹시나 모를 변수에 대비하여 몇 시간 일찍 가서 기다렸다.  훈련 시작 한 시간 전쯤 되니 선수들이 하나둘씩 훈련장으로 오기 시작했다. 발베르데 감독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올 때마다 나는 내가 마주한 상황이 현실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몇 년 동안 TV로만 보던 사람들이 내 눈앞에 있고 내 유니폼에 사인을 해주는 상황, 독자 여러분들이라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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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만나던 꿈만 같은 순간.

 

이렇게 꿈만 같던 순간을 지나 경기 당일이 되었다. 홍보팀 담당자를 만나 내 자리를 알려주고 하프타임 때 담당자분이 자리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별일 아닌듯이 그 다음날 구단 사무실을 방문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프타임때 홍보팀 담당자가 자리에 오더니 잠깐 따라오더라고 했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디로 데려가냐고 물어보니 씩 웃으면서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나를 데려간 곳은 바로 피치 위였고 트위터에 올릴 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바로 가능하다고 말했고 나는 담당자분으로부터 한 종이봉투를 받았다.

그 종이봉투에는 선수들의 사인과 함께 스페인어로 (내 이름)을 위해, 아틀레틱의 친구들이라고 적혀있었고 그 안에는 그 시기에 출시한 50년대 레트로 티셔츠가 들어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감동의 연속이었다.

경기 다음날 구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공식 트위터 관리자 분이 구단 사무실을 가이드해주었다. 사무실을 다 보고 나오기 전에 어떻게 나를 알고 연락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관리자가 말하길, "우리는 가끔씩 바스크 지방 바깥에도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어요, 하지만 당신같이 세계 곳곳에서 오는 팬들 덕분에 우리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전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 줘요. 경기가 많은 달이라 바빴지만 레딧에서 한국에서 직접 와서 사인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바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이런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겠는가. 진짜 스페인 여행을 통해 평생 팀에 충성하게 될 동기를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니 구단으로부터 이렇게 큰 혜택을 받았는데 나도 팬으로서 구단을 위해 우리가 정말로 많이 응원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공식 팬클럽, 페냐가 생각이 났다.

한국에 아틀레틱 팬들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개개인의 팀에 대한 충성심은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이 팬들을 모아 구단으로부터 한국에도 열혈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다면 그것이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네이버 팬카페에다가 회원들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페냐 창설에 동의하는 의견을 내비쳤고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페냐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인원들이 모였다고 생각했다. 한국팬들의 의견을 확인한 후 구단에 어떻게 페냐를 만드는지 문의를 해보았다. 게다가 페냐를 만들기 위해 의견을 모은 팬분 중 한 분은 출장 중임에도 시간을 내주어 구단 사무실을 방문하여 담당자와 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구단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이해했는지 이역만리 먼 곳의 팬이라 무시하지 않고 상세하게 절차를 알려주었다.

한국 팬들이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은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그에 대한 증명서를 구단에 제출하는 것뿐이었다. 비영리 단체 설립이라는 생소한 일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인터넷에 찾아보아도 단편적인 정보밖에 안 나오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진전이 될 리가 없었다.

결국 논의 끝에 법무사를 찾아가 단체 설립에 대한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고 카페 매니저님의 주도하에 모금을 진행했다. 다행히도 페냐 설립에 대해 한국 팬분들은 열정을 보여주셨고 단체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페 매니저님이 가장 많은 돈을 쾌척하고 법무사 사무실을 방문하여 절차를 진행하며 페냐 설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단체 설립을 국내에서 마치고 나는 구단과 연락하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페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구단뿐만 아니라 해외의 여러 페냐들의 관리자 하고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한국에도 페냐를 만들 만큼 팬들이 열정적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23년 10월, 공식 홈페이지에 드디어 전 세계의 페냐 목록 중에 우리 페냐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회장은 기존 팬카페의 매니저님이 맡기로 했고 부회장 자리는 부매니저를 하던 나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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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나의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페냐들은 페냐를 설립한 뒤 자신들의 소감이나 목표를 동영상을 촬영해서 구단에 전달하고 공식 게시물을 통해 설립을 알린다. 아쉽게도 한국 페냐의 회원들은 직접 만나서 활동에 대해서는 참여율이 저조해서 설립에 대한 영상을 찍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나 혼자서 소감 영상을 만든다는 말인가.

몇 달 동안 페냐 간부진이 참여를 독려한 덕분에 영상 출현을 원하시는 분들이 몇 분 모여 영상 촬영을 했고 드디어 공식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통해 우리 페냐 설립을 알리는 게시물이 올라갔다. 세계 곳곳의 아틀레틱 팬들이 남긴 페냐의 탄생을 축하하는 댓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페냐 설립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페냐 설립을 알리는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 팀은 국왕컵 결승을 앞두고 있었고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신생 페냐에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는지 궁금해하는 언론사가 몇 개 있었다. 현지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열심히 인터뷰를 준비해서 보냈지만 실제로 신문에 실린 곳은 몇 군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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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몇 안되는 기사다.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국왕컵 결승을 단관 하고 싶다는 연락을 현지인으로부터 받았다. 한국에서 잠깐 연수를 받고 있는 대학생인데 약 30명을 데리고 한국 팬들과 축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규모에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연락을 주고 우리 쪽에서 30명 이상 수용가능한 바를 빌리는데 필요한 요건들을 다 채우고 와주었다. 네이버 카페시절부터 포함하면 아틀레틱 국내 팬덤 역사상 최초의 단관이었는데 첫 단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따로 단관 준비과정부터 소감까지 다른 게시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이렇게 내가 어떻게 축구에 빠져들게 되었고 축구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정리해 보았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량이 나와서 스스로도 당황스럽지만 아직 이야기를 다한 게 아니다.

필자는 국내축구의 수원삼성 블루윙즈라는 팀의 팬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축구부터 입문한 사람들은 보통 해외축구만 계속 챙겨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해외축구를 몇 년간 보고 나서도 K리그와 수원 삼성의 매력에 빠져 5년 동안 거의 매주 직관을 다니며 팀을 응원하고 있다. 수원 삼성과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지만 아틀레틱 클럽과는 다른 이야기라 연관 지어 써 내려가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별개의 게시글로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돌아와서, 축구를 싫어하던 소년이 이렇게 이역만리 타향에 있는 팀을 좋아하고 그 팀의 공식 팬클럽 부회장까지 역임하는 이야기는 지금 글을 쓰는 본인이 봐도 찾기 어려운 사례이다. 여러분도 팀을 응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다.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고 내 응원팀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은 과감하게 시도해 보자, 언젠가는 당신의 상상, 아니면 그 이상으로 결과가 돌아올 것이다.

여러분들이 꿈꾸는 그 곳에 닿기를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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