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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결혼에 대한 편견이 좀 있는데 이거 어떻게 고치지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3-01-05 08:59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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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고, 평소에 눈팅만 좀 했었는데 기왕이면 남초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좀 얻고 싶어서... 아마 욕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데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고민을 오래 하다가 용기내서 글을 써 봄.


우리 엄마는 흔히 네이트판 같은데서 나올 법한 결혼 생활을 하셨음. 맞벌이인데도 불구하고 독박 가사, 독박 육아를 하셨음. 집안일은 과장 안 보태고 아빠가 거든 게 단 한 개도 없음.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기타 등등 전부 엄마 몫. 육아도 심지어 우리 엄마가 저녁 하게 애 좀 보고 있으라 하면 놀아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이런 거 일절 안 하고 정말 바라만 보고 계셨다 하실 정도로 개입을 안 하심. 조금 더 나이가 차서 그때 그 시절이 기억이 나기 시작할 무렵에도, 당연히 난 아빠와 시간을 보낸 추억이 그닥 없음. 내 기억속 우리 아빠는 제자식 보는 것도 귀찮아서 늘 거실 소파에 누워 티비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었음.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놀이를 한 건 흐릿하고 어렴풋하게라도 기억이 나는데 아빠는 그런 게 없음. 아빠에 대한 정이 없음.

시어머니는 (나에겐 친할머니) 한 달에 한 번 아들네 놀러오셔서 2주간 머무르고 가심. 그것도 조용히 머무르다 가셨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머무르시면서 우리 엄마도 일해서 돈 버는 거 뻔히 아시는데 맨날 집안 상태 꼬투리 잡으면서 엄마 혼내고, 아빠가 뭘 잘못하시면 "네가 그러니까 네 남편이 저러는 거 아니냐"며 엄마를 혼내셨음. 

부모님은 당시 강아지를 키우셨고, 엄마는 애를 그닥 낳고 싶지 않아하셨는데 시어머니가 애를 낳아야 하는데 집에 개가 있으면 못 쓴다며 강제로 엄마가 키우던 강아지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내버리셨다고 함. 

난 어릴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엄마를 혼내기만 하는 무서운 친할머니를 싫어했음. 이제와서 나이들고 적적하시니 사람 좋은 척, 며느리도 잘 챙기는 자애로운 시어머니인 척 하시는 걸 보면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듦.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는 어머니께 들었던 거지만 아빠도 본인 스스로 그땐 그랬다며 인정 하셨고, 나머지는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음. 

난 그래서 '딸은 아빠 닮은 남자와 결혼한다'라는 말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싫어했음. 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기가 죽기 보다 싫음.

내가 철이 좀 늦게 드는 탓에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집안일을 같이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맞벌이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아빠는 여전히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셨음. 

그러면서 본인 정도면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고 진지하게 착각하시는 것도 너무 싫었음. 너네 엄마는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 복 받은 거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대체 어느 면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고 엄마는 아예 체념하셔서 대꾸도 하지 않으심. 


여튼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다보니 결혼생활에 대한 편견이라 해야하나, 극심한 두려움이 생겼음. 물론 머리로는 우리 부모님 결혼생활이야 사실 시대가 시대이기도 하고... 거기다 시대를 감안하고서라도 우리 엄마가 특히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걸 알고 있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저렇게 사는 경우는 없거나 극히 드물다는 것도 알고, 반대로 아예 퐁퐁이다 뭐다 해서 오히려 남자가 개고생하면서 사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앎. 아니면 그런 거 없이 서로 도와가고 맞춰가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들도 많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음. 근데 내가 보고 자란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이 매치가 안 돼서 그런건지, 머리로 아는 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질 않음. 

결혼이라는 게 실패확률이 지나치게 높은 도박처럼 느껴짐. 유튜브나 방송에서 행복하게 결혼생활 하는 커플을 봐도 '근데 어차피 카메라 앞이잖아. 연기하는 거 아니야?' 라는 꼬인 생각이 들고, 바로 근처 지인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냥 행복한 척 하는 건 아닐까', '쟤네가 행복하다고 이 세상 모든 부부가 행복한 건 아니잖아' 라는 사회부적응자 같은 생각이 듦.

내가 결혼을 했는데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독박 가사를 하게 되면? 난 애 낳기 싫은데 상대나 상대 부모가 애 낳길 강요하면? 우리 엄마처럼 육아를 혼자 하게 되면? 우리 친할머니 같은 사람이 내 시어머니가 된다면?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내 남편이 된다면? 나 같이 철 안 든 애새끼가 내 자식이라면?

'결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오름. 나이가 찰수록 연애를 하다보면 결혼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라, 그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임. 


근데 머리로는 이게 건강하지 못 한 사고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더 힘든 것 같음. 내가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 편견과 두려움이 과하다는 걸 머리로 아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질 않아서 자꾸 내 안에서 둘이 충돌함. 가끔 우리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떠올리며 지나친 편견을 갖고 있는 내가 꼴페미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지기도 하고 그럼.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평생 노처녀로 살다 외롭게 죽는다' <- 뭐 이런 말은 어차피 결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 솔직히 타격감도 없고 그러려니 함.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게 두려운 건 아닌데 그냥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내 스스로가 싫음. 편견인걸 알면서도 편견을 못 떨치는 게 진짜 병신 같고 뭘 어떻게 해야 이 편견이 사라지는지, 뭘 어째야 머리로 아는 사실이 마음으로도 받아들여질지를 모르겠음. 


근 몇 년 간 이게 계속 고민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도 어려운 얘기임... 그렇다고 여초 커뮤니티에 글 써봐야 편견 없애주는 말은 잘 안 달릴 것 같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여기로 왔는데 현실적으로 조언 좀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진짜 내 생각이 건강하지 못 하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아는데 이게 왜 안 없어지는지를 모르겠어서 나 스스로가 너무 싫은데 이건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부분일까. 이 정도로 무언가에 대해 맹목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두려움을 느끼면 정신병인건가?

나 진짜 진지하게 이런 비정상적인 사고방식 고치고 건강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음...


+) 남사친들도 있고 연애도 해봤으나 유독 '결혼'에 대한 두려움만 사라지지 않음. 

예전엔 연애라는 것 자체도 무서웠었는데 이건 연애를 하면서 내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생각이 편견이었구나, 라는 걸 몸으로 체험하게 돼서 연애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거든. 근데 결혼 생활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아직 경험해보질 않아서 그런지 결혼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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