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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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기 언어 cosmetic , 化粧品

요약 세안에는 비누와 물이 가장 효과적이다. 화장을 지울 때는 세안용 크림을 쓴다. 나이트 크림, 영양 크림 등은 마사지 효과를 돕고,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파운데이션은 15%가량의 스테아린산을 함유하고 있다. 루즈는 입술 색과 질감을 높이며, 블러셔는 혈색이 돌도록 하는 데 쓰인다. 눈화장품으로는 마스카라, 아이섀도, 눈썹용 연필, 아이라이너 등이 있다. 립스틱은 안료를 이용해 색을 낸다.
삼푸는 음이온의 세척제로, 지방 제거력이 뛰어나다. 헤어 드레싱과 헤어 스프레이는 모발에 윤기를 주고 손상 없이 고정할 때 유용하다. 향수는 모든 화장용품에 사용되며, 화학적 안전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기타 위생제품과 관련용품으로 치약, 살균비누, 면도용품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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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기초 화장품
  3. 마무리 화장품
  4. 두발화장품
  5. 향수와 기타 방향제
  6. 위생제품과 관련용품
  7. 서양의 화장품 역사
    1. 기원
    2. 로마 시대 및 르네상스 시대
    3. 근대
  8. 동양의 화장품 역사
    1. 서아시아와 인도
    2. 중국
  9. 한국의 화장품 역사
    1. 고대
    2. 삼국시대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5. 개화기 이후
화장품
화장품

개요

고대부터 사용되어왔으며, 근대에 와서는 화장품 제조업이 주요산업으로 부상했다.

기초 화장품

안면 보호의 기초 단계는 세안으로, 아직까지는 비누와 물이 미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진한 화장을 지우거나 피부가 민감할 때는 세안용 크림이나 로션을 쓰는 것이 좋다. 종류는 물이 크림에 부유하는 진한 콜드 크림 형태에서부터 세안용 유액이라 불리는 유중수 유상액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들은 원래 천연지방 혼합물에 물을 넣고 저어서 만들었으나 근래에는 광유에 적합한 유화제를 넣어 물 속에 기름이 고루 분포하도록 하고 물의 기화를 늦추어 냉각 효과를 얻는다.

유연 크림, 나이트 크림, 영양 크림 등은 보통 마사지 효과를 돕고, 밤새 피부에 두꺼운 막을 남겨서 수분 손실을 최소화한다. 이 과정은 습윤제와 식물추출물 등의 특수 성분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제, 바람, 건조한 공기로 인한 피부 손상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핸드 크림과 로션은 자연복구가 이루어지는 동안 수분 공급을 돕고 기름막을 형성한다. 기타 기초 화장품인 토닉과 프레시너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로 사용하는 수렴제와 2차 여드름감염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살균제를 함유한 희석된 알코올 성분의 로션이다.

마무리 화장품

고전적인 파운데이션은 색소가 없는 배니싱 크림으로 수중유 유상액이다.

이것은 15%가량의 스테아린산을 함유하고 있으며 일부가 비누화해 결정체가 되면서 광택이 난다. 건조한 피부를 위한 유분함유제품은 비(非)이온 유상액과 색소물질을 함유한다. 유분이 적은 수중유 유상액인 액체 파운데이션은 색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파운데이션 크림과 화장분을 함께 쓰는 대신에 사용한다. 화장분은 파운데이션 위에 바른다. 루즈는 입술의 색과 질감을 높이는 데 사용되며, 블러셔(blusher)는 얼굴에 밝은 혈색이 돌도록 하는 데 쓰인다.

화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눈화장이 필수적이다. 눈화장품으로는 속눈썹을 강조하기 위한 마스카라, 눈 주위에 펴바르는 아이섀도, 눈썹용 연필, 눈의 선을 강조하는 아이라이너 등이 있다.

입술화장품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립스틱은 이산화티틴 안료와 에오신 색소 등을 이용해 색을 낸다. 립새브(lipsalve)는 립스틱과 비슷하지만 색이 약하거나 없는 제품으로 입술을 보호하고 윤기를 주기 위해 사용한다. 얼굴이나 몸을 태울 때는 피부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탠 제품을 사용한다. 이것들은 특수한 자외선 차단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피부 보호에 필요한 막을 형성한다.

두발화장품

시판되는 샴푸는 보통 용해가 잘 되는 음이온의 세척제로, 경수에 강하고 지방 제거력이 뛰어나다.

샴푸에는 향기와 점성조절물질이 첨가되며, 모발상태에 따라 삼푸의 필요성분을 조절할 수 있다. 헤어 드레싱과 헤어 스프레이는 모발에 윤기를 주고 자연광택의 손상 없이 원하는 형태로 고정할 때 유용하다. 천연 또는 합성수지로 구성된 헤어 스프레이는 휘발성 용제에 녹는 가소제와 향기를 함유하고 있으며, 미세한 분무형태로 뿜어나온다.

완전 유성물질인 브릴리언틴(brilliantine)이나 유중수 형태의 유상액은 특히 검은 머리에 윤기와 고정력을 주는데, 더운 기후에서는 좋은 향기를 내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 인기 있는 알코올 성분의 로션은 두피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치료용·향수용으로도 좋다. 손상된 모발의 치료를 위한 첨가제·강화제도 판매되고 있다. 퍼머넌트는 모발의 모양을 원하는 형태로 바꿀 때 효과적인데, 전통적인 열처리 방법 외에도 티오글리콜산암모늄을 이용하여 모발의 결합을 약화시키고 산화를 통해 모발에 굴곡을 주어 풍성해보이는 화학적 방법도 쓴다.

모발 염색약·표백약은 모발에 활력을 주거나 흰머리를 감추는 데 사용된다. 예전에는 특정인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영구 염색과 반영구 염색 모두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다. 일시적인 효과의 유색 래커와 모발에 유색막을 형성하는 모발고정용 로션도 있다.

향수와 기타 방향제

향수는 실질적으로 모든 화장용품에 사용되며, 그 향기는 목적에 따라 화학적 안전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특정한 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식물성·동물성·화학 성분 중에서 20~100가지 이상의 성분이 혼합된다. 가장 단순한 향수인 화장수와 오 드 콜로뉴는 일시적으로 상쾌한 느낌을 주도록 향기성분이 알코올에 녹아 있는 것이고, 손수건용 향수는 보다 진한 알코올 용액이다.

위생제품과 관련용품

연마제와 세척제를 함유하고 있는 치약은 치아와 잇몸을 튼튼하게 하고 세균감염을 억제한다.

치약에는 치아 부식 및 충치 예방에 효과적인 불소화합물이 들어 있다. 구강세척제는 구강위생을 위한 것으로 약간의 살균작용물질에 수렴성의 적합한 향을 첨가하여 만든다. 땀분비를 줄이는 방한제와 살균작용을 통해 냄새를 제거하는 방취제는 향수를 혼합하여 스프레이나 공 모양의 제품으로 만든다.

살균비누, 목욕용 기름, 향기와 상쾌한 느낌을 주는 조제품 등의 사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배스 크리스탈은 물을 부드럽게 하고 비누찌꺼기를 줄이는 효과를 내며, 버블 배스는 풍부한 거품으로 유쾌한 감촉을 제공한다. 목욕 후의 상쾌함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애프터 배스 제품은 열대지방에서는 향기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생용으로 살균제를 함유시킨다. 탈모제는 다리와 겨드랑이의 털 제거를 주목적으로 하며, 땀냄새 제거제가 첨가되기도 한다.

탈모제를 쓰지 않으려면 화학적 방법으로 털을 약하게 하여 피부 표면에서 제거하거나, 밀랍을 바른 후 제거하는 방법 또는 면도하는 방법을 쓴다. 면도용 비누·크림·거품 같은 면도용품은 면도를 쉽게 해주고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면도 전후에 바르는 로션과 가루분은 건식면도를 할 때 얼굴을 보호하고, 면도 후에 피부를 잘 정돈해준다.

매니큐어 용품 중 손톱의 보호와 치장에 쓰이는 매니큐어는 니트로셀룰로오스 래커에 유연제와 색소를 첨가한 것이고, 매니큐어 제거제는 아세톤이나 아세트산에틸 같은 용제로 만든 것이다.

유아용품은 기본적으로 성인용품과 유사하나, 향이 약하고 부드럽다. 순한 특성으로 인해 자극에 약한 피부를 가진 성인들이 구입하기도 한다.

서양의 화장품 역사

기원

화장품에 대한 초기 기록은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3000년경 티니스 왕조시대의 죽은 왕과 함께 묻힌 화장품과 연고가 발견되었고, BC 1500년경에 사용된 콜먹과 안티모니 연필 및 나아드 향 덩어리가 그려진 그림도 발견되었다. 투탕카멘 왕(BC 1361~52)의 무덤에서는 향료를 담은 연고병이 발견되었다. 이 당시는 주로 성직자들이 이런 물질을 조제했으며, 화장품을 만드는 일은 비밀스럽고 존경받는 일이었다. 화장품 성분의 수와 종류는 단순하여, 이집트산 백리향과 오리가넘이 발라노스라는 물질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나 기초 성분은 대부분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몰약·유향·감송이었고, 편도와 올리브 유는 물론 참기름도 향유로 사용되었다. 목욕통은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목욕통이 보다 정교해졌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거나 색을 내기 위해 향유·연고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장품은 천연재료를 사용해 미를 가꾸려는 이집트 여인들에 의해 발달되어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이집트의 무덤과 회화를 보면 눈화장을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화장법은 20세기 후반에 유행하는 눈화장과 매우 유사하여 눈두덩은 녹색으로 칠하고 눈꺼풀·속눈썹·눈썹은 안티모니로 만든 콜먹으로 검게 칠했다. 그밖에 헤나 물감으로 손톱·손바닥·발바닥을 염색했으며 빗과 청동거울도 사용했다.

성서의 〈열왕기하〉 9장 30절, 〈에제키엘〉 23장 40절, 〈예레미아〉 4장 30절 등에는 유대 여인이 화장품을 사용한 기록이 있고, 〈코란〉 56장에도 눈화장에 대한 언급이 있다.

로마 시대 및 르네상스 시대

로마인들은 초기에 외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네로가 등극한 AD 54년경부터는 화장품과 향수가 궁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에서는 연백(鉛白)과 백악으로 피부를 하얗게 하고 이집트 콜먹으로 눈꺼풀과 속눈썹을 칠했으며, 볼과 입술에 바르는 루즈의 일종인 푸쿠스, 탈모제의 일종인 프실로트룸, 여드름과 피부 발진 치료를 위한 보릿가루와 버터, 치아 미백을 위한 경석 등도 사용되었다.

유행에 민감한 로마 여인들은 갈리아 지방에서 전해진 비누로 머리를 표백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본적인 향수와 화장품에는 순수한 연고(레디스마타), 액체 연고(스팀마다), 가루향수(디아파스마타)의 3종류가 있었다. 화장품의 사용은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알려져왔으나, 십자군에 의해 동양의 화장품이 유입되어 크게 유행했다. 더운 물 목욕과 포도주 세안이 피부미용을 위해 선호되었고, 우유 목욕이 행해졌으며, 가루분, 검은 헝겊, 향수가 사용되었다.

근대

18세기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화장이 성행하여 화장품 사용과 인위적인 몸치장에 법적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공개적인 화장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식민지 아메리카와는 달리, 이탈리아와 프랑스 궁전에서는 화장품 사용이 선호되어 과학적 토대 위에서 미용용품을 제조하게 되었다. 미국의 화장품 역사는 유럽과 비슷했으나 토착 인디언들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미용품을 꺼리던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주의도 미국의 화장 습관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는 화장품 개발과 제조의 선구자였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화장이 허용되기 전부터 화장을 해왔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의학과 유기화학이 급속히 발전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화장에 대한 반대와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한 이래 20세기 후반에 들어 다양한 화장품이 나타났다.

동양의 화장품 역사

서아시아와 인도

서아시아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바빌로니아·아시리아 시대부터 이미 눈썹을 그렸으며, 연지나 백분을 사용하는 화장법이 있었다.

또 공작석의 녹색 분말로 눈 주위를 물들이는 아이섀도와 손톱을 빨갛게 칠하는 매니큐어가 유행했다. 특히 9~10세기의 아바스 왕조 시대에는 화장사 직업도 생겼으며,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아이섀도와 매니큐어로 치장하는 일에 골몰했다. 또 상류사회의 여인들은 얼굴의 털이나 체모를 족집게로 전부 뽑고 온 몸에 아르메니아산 황토를 발라서 문대는 풍습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눈썹을 청색으로 그리는 풍습과 눈썹 사이에 꽃잎 또는 별 모양의 무늬를 그리는 화장법이 행해졌으며, 이러한 화장법은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

눈썹 사이나 이마에 꽃을 그리는 것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종교·종파를 구별하기 위한 상징이었는데, 서역에 전해지면서 일종의 화장법으로 유행했다. 동서 교류의 발달에 따라 이 화장법과 함께 호분·자황(雌黃)·연지 등의 화장 원료도 중국에 전해졌다. 또한 향유·향료수 등도 많이 유행했는데, 금안향(金顔香)·침향 등 명품의 원산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였다.

중국

BC 6세기의 〈시경 詩經〉에 보이는 '아미'(蛾眉)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에 관한 기록이다.

여성의 눈썹은 곤충의 더듬이처럼 가늘고 긴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되어 있으므로 귀부인들은 앞다투어 숯이나 목탄으로 눈썹을 그렸다. 이처럼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풍습은 그후 2,000년 이상 전래되었으며, 특히 당대(唐代)의 회화나 시에 이러한 눈썹을 가진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입술연지나 백분도 미묵(眉墨)과 마찬가지로 예부터 중국에서 사용된 화장품이며, 이것을 합해서 지분(脂粉)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BC 4세기의 문헌에 자주 나타나며, 그 시대의 유적에서 출토한 화장구에서는 그 잔유물이 나왔다. 초기의 백분은 연백(鉛白)이나 활석이었으며, 입술연지에는 은화합물의 진사(辰砂:朱丹), 적토가 쓰였다. 한대(漢代)에 들어와 여성의 화장법은 급속히 발달했다. 기름에 개어서 만든 백분이 등장했고, 얼굴은 물론 목과 어깨에까지 백분을 발랐으며, 송진과 납을 섞은 포마드로 머리를 다듬는 것이 유행했다.

또 미묵에 황토를 써서 그리는 황미(黃眉), 슬픔을 머금은 듯하게 그리는 수미(愁眉), 눈 밑의 백분을 일부러 벗겨서 운 듯이 보이게 하는 체장(滯粧) 등의 독특한 화장법까지 고안되었다.

4세기경의 작품인 고개지의 〈여사잠도권 女史箴圖卷〉에는 머리를 땋은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어떤 여인이든 이마 주변에 일(一)자 또는 십(十)자의 황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마 주변의 머리칼을 정리하기 위한 화장법으로 액황(額黃)이라고 했다.

이 풍습은 한대초에 몽골 등의 주변 유목민족에게 전해져 널리 중앙 아시아까지 유행했다. 한대말인 3세기경에는 서역과의 교류가 성행하여 멀리 서아시아와 인도의 화장법이 중국 여성들에게 유행하게 되었다. 당대에 들어서 지분과 눈썹을 진하게 그리는 화장은 그 절정에 달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백분을 칠한 후에 붉은색 또는 연지로 붉은빛을 띤 홍장(紅粧)을 하는 것이었다. 입술도 한층 아름답게 치장했고, 궁중의 여인들은 다투어 홍분 화장을 했다.

또 전대부터 이어내려온 황액도 행해졌고, 눈썹을 그리는 일은 한층 성행했다. 그밖에 인도에서 전해진 눈썹 사이에 꽃 모양을 그리는 일, 양쪽 뺨에 보조개를 그리는 일 등이 성행해 여인의 화장은 완성된 정형을 이루어 농염한 것이 되었다. 당대 이후는 대부분 당대 화장의 답습이었으며, 이들의 화장법은 그 재료와 함께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한국의 화장품 역사

고대

한국 고대의 화장은 선사시대 패총에서 출토된 원시적인 장신구, 즉 조개껍질·짐승뼈 등으로 만든 목걸이·팔찌·관옥·곡옥 등으로 보아 그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북동에 거주했던 읍루인들은 겨울에 동상 예방과 피부연화에 돼지기름을 이용하며, 말갈인들은 피부미백을 위해 오줌에 세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랑의 유물인 채화칠협(彩畵漆篋) 그림의 인물상에는 이마 주변의 털을 뽑은 흔적이 뚜렷하며 굵고 진하게 눈썹을 그린 점으로 보아 이 시대에 이미 기본적인 화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마한·변한 사람들은 원시화장의 일종인 문신을 했다고 전한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수산리 고분벽화의 귀부인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뺨과 입술이 연지로 장식되어 있으며, 쌍영총 벽화의 여인들 역시 연지화장을 하고 있어 화장이 여인들 사이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백제인들은 시분무주(施粉無朱:분은 바르되 연지는 하지 않음)의 화장법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는 화장용 백분 용기로 추측되는 토기합이 출토되었다. 또한 일본의 〈화한삼재도 和漢三才圖〉에는 백제로부터 화장품 제조기술과 화장법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백제가 보다 앞선 화장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신라는 영육일치 사상으로 깨끗한 몸과 단정한 옷차림을 추구했으며, 이에 맞는 화장법이 발달했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엷은 화장이 일반적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다소 화려해졌다. 여인들은 동백·아주까리·수유의 열매로 만든 머릿기름을 사용하고 백분을 썼으며, 이마·뺨·입술에 잇꽃(紅花) 연지를 발랐다.

그밖에 미묵을 사용해 눈썹을 그렸고 산단(山丹:백합의 붉은 수술)으로 색분을 만들었으며, 7세기말에는 연분(鉛粉)이 제조되었다. 또한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향낭을 차고 다녔다. 한편 화랑들은 여성과 같은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패용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화장문화가 그대로 계승·발전되었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향유를 즐기지 않았으나 향낭은 많이 차고 다녔고, 분은 바르되 연지는 좋아하지 않았으며, 눈썹을 넓게 그리고 검은 비단으로 만든 너울을 썼다고 한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기생을 제도화하여 화장법도 기생들의 짙은 분대(粉黛) 화장과 여염집 여성들의 옅은 화장으로 나누어졌다. 분대화장은 백분을 도포하듯이 바르고 눈썹은 가늘고 또렷하게 그리며 머릿기름을 많이 쓰는 화장이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다.

특히 안면용 액상화장품으로 추측되는 면약(面藥)이 사용되었고, 염모(染毛)가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근검·절약이 강조되었던 조선시대에는 여염집 여성들의 화장과 기생·궁녀들의 의식화장이 더욱 뚜렷이 구분되었는데, 〈규합총서 閨閤叢書〉에 여러 가지 화장품 제조법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일반 가정에서 화장품을 직접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문소설 〈여용국전 女容國傳〉에는 화장구와 화장품 20여 종이 등장하며, 숙종 연간에는 화장품 행상인 매분구(賣粉嫗)가 집집마다 방문판매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화장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기 이후

개항 초기에는 주로 일본과 청나라를 통해 백분·크림·비누·향수 등 서양의 화장품과 화장법이 도입되었으며, 1920년대에는 유럽의 화장품이 수입되기도 했다.

화장은 일반적으로 향기가 진해지고 입술연지의 빛도 진해졌다. 8·15해방을 거쳐 6·25전쟁을 치르는 동안 화장품산업은 침체되고, 대신 수입화장품 및 밀수품, 미군부대를 통한 불법 유출품들이 범람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화장품 생산이 본격화되었는데, 화장은 점차 입체화장이 되어갔으며, 배니싱 타입의 크림과 백분의 소비량이 줄어들고 액상색분(파운데이션)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980년대 이후 화장은 필수화하는 추세를 보였고, 화장연령이 저연령화·고연령화되어 화장인구가 두드러지게 증가했으며, 여기에 일부 남성들 사이에도 화장이 보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