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협동조합

다른 표기 언어 cooperative , 協同組合

요약 협동조합은 농산품의 가공·판매, 다양한 장비와 원자재의 구매, 도·소매업, 발전소, 은행업, 주택건설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운영되어왔다. 소매 협동조합의 수익은 대개 일정기간의 구매량을 기준으로 책정된 배당금 형태로 소비자에게 주어진다. 협동조합운동은 19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지방의 공업·광산 지역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중앙·남아메리카의 경우 1910년대초 유럽 이주민에 의해 협동조합이 보급되었다. 판매·신용 협동조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판매 협동조합은 농산물에 대한 중앙통제적 구매구조의 한 부분으로 기능했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1920년대에 일제에 대한 경제적 저항운동의 하나로 일어난 민간협동조합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역사
  3. 한국의 협동조합
    1. 초기의 협동조합
    2. 종합농협의 탄생
    3. 신용협동조합
    4.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협동조합
협동조합

개요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협동하여 판매와 구매, 제조 등을 시행하는 단체. 협동조합은 농산품의 가공·판매, 다양한 장비와 원자재의 구매, 도·소매업, 발전소, 은행업, 주택건설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어왔다. 소매 협동조합의 수익은 대개 일정기간의 구매량을 기준으로 책정된 배당금 형태로 소비자에게 주어진다.

역사

미국에서 코옵스(coops)로 약칭되는 현대적인 소비자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의 로치데일 평등주의자협회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회는 일련의 조직규범 및 업무원칙을 세우고, 이를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했다. 주요원칙으로는 개방적인 회원제도, 민주적 관리, 종교적·정치적 불평등의 제거, 공정한 시장가격의 유지, 교육을 위한 수익금의 적립 등이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19세기 후반에 특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지방의 공업·광산 지역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 등의 도시 노동자계급과 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핀란드 등의 농촌주민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미국에서는 19세기초 소비자 농산물판매협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했다. 대부분의 미국 협동조합이 농촌지역에서 발전된 반면, 소비자주택 협동조합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도시지역에 보급되었다.

중앙·남아메리카의 경우 10년대초 유럽 이주민에 의해 협동조합이 보급되었고, 후에 농업개혁정책과 함께 정부에 의해 육성되었다. 판매·신용 협동조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판매 협동조합은 농산물에 대한 중앙통제적 구매구조의 한 부분으로 기능했다. 이들 나라의 협동농장은 러시아의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여 모든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되며, 소득은 경작성과에 따라 분배되었다.

한국의 협동조합

초기의 협동조합

한국의 협동조합은 1920년대에 일제에 대한 경제적 저항운동의 하나로 일어난 민간협동조합운동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들 협동조합은 1930년대 초반에 조선총독부가 벌인 농촌진흥운동에 의해 탄압되어 1930년대 중반에는 소멸되고 말았고 8·15광복까지 일제의 관제에 의한 금융조합, 농회 등이 수탈의 도구에 이용되는 등 자발적 조합운동은 긴 동면에 들어갔다. 광복 후에는 정치적 혼미 속에서 좌익과 우익이 각자 협동조합운동을 일으켰으나, 서로 간의 갈등과 대립, 지주와 자본가들의 반대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6·25 전쟁후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논의되었으며, 1957년 국회가 농업협동조합법과 농업은행법을 제정함으로써 이듬해 정부 및 농협중앙회의 주도로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을 전국에 걸쳐 설립하게 되었다.

종합농협의 탄생

하지만 정책자금을 농업은행이 맡고 구매·판매·이용·가공 등을 농업협동조합이 담당하는 이원적인 조직은 흡사 일제 시대 때 구조와 비슷하여 농민과 자본, 정부 간에 서로 불협화음과 비능률을 드러냈고, 이로써 대다수의 협동조합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4·19혁명 후 1961년초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을 통합하는 안을 마련했으나, 금융조합이 반대로 계류하다가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후 8월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합한 종합협동조합으로 재편되면서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운동은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 설립된 종합농협이 현 농협의 시작이다. 이 종합농협은 농민중심의 조합보다는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컸고, 또한 정부에서 조합장을 임명하는 체제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어 1962년에는 수산업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조합중앙회가 각도의 어업조합연합회를 해산하고 해당 업무를 관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부조직인 어촌계를 조직했다.

신용협동조합

1950년대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메리가별수녀가 중심이 되어 1960년 '성가신용협동조합'이 한국 최초 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서울에서는 장대익 신부와 협동경제연구회의 주도로 ‘가톨릭중앙신용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을 기점으로 소비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었다.

1964년 50여 개로 늘어난 신용협동조합은 신용협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해 신용협동조합법 법률제정운동을 펼쳤다. 1972년 정부입법으로 신용협동조합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1973년에는 277개 조합대표가 모여 신협법에 의한 특별법인 신용협동조합연합회가 공식발족했다. 그러나, 70년대 정부 지원을 받는 새마을금고와 경쟁해야 했고, 80년대에는 조합에서 금융사고가 일어나 결국 정부 규제를 받아 신용협동조합 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 장애를 겪었다.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

그러나, 꾸준한 노력으로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1988년 말에 국회에서 농업협동조합법·수산업협동조합법·축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각 조합의 중앙회장을 회원조합장들이 직접 선출하며, 중앙회장이 임명해왔던 회원조합장은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협동조합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이후 2012년에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조합 설립에 대한 출자금 제한도 없어지고 조합원들의 책임도 유한책임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