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혁명

다른 표기 언어 revolution , 革命

요약 혁명은 본래 프랑스 혁명처럼 통치형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만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18세기부터 일어나는 유럽의 주요혁명들은 통치형태만이 아니라 경제체제와 사회구조 및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혁명은 기존의 신조, 도덕, 문화가치 등이 타락하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기존가치를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힘을 기울였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폭군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기 위한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칸트는 사회에 좀더 높은 윤리적 토대를 실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만이 혁명이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근대 이후 혁명은 기존 권력의 부패가 원인이 되며, 이후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 간의 다툼이 내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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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정부를 전복하는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원래 혁명은 통치형태의 순환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18세기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혁명은 과거의 전통적 양식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주요혁명들은 통치형태만이 아니라 경제체제와 사회구조 및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라는 개념은 매우 파괴적인 힘으로 간주되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회의 기본도덕과 종교적 신조가 타락한 뒤에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변함이 없고 확고한 신념체계가 혁명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혁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문화의 기본 가치체계가 허약해지면 그 사회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기 쉽다고 결론지었다. 중세에도 고대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신앙과 통치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중세 사람들은 혁명과 싸우고 사회변화를 억누르는 방법을 찾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종교적 권위가 워낙 강하고 질서유지에 대한 신념이 종교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사회안정을 어지럽히지 말고 힘의 불균형을 인정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르네상스 시대에 세속적 휴머니즘(인문주의)이 등장하면서 혁명을 신성모독의 한 원인으로만 여기던 관점이 바뀌어 보다 근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혁명의 위협에 견딜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권력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그는 필요할 경우 통치구조를 바꾸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저서에서 혁명이라는 말을 1번도 쓰지 않았고 진정으로 안정된 국가를 만드는 방법에만 주로 관심을 쏟았지만, 변화에 대한 이같은 견해 때문에 근대 혁명사상의 선구자로 간주된다.

17세기 영국의 작가 존 밀턴은 사회로 하여금 자체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혁명의 고유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혁명이 권력을 남용하는 폭군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백성의 요구를 반영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사회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밀턴에 따르면 혁명은 자유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18세기에 일어난 프랑스와 미국의 혁명은 압제적인 지도자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도였다. 근대혁명은 유토피아을 변화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혁명을 인류의 진보를 위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혁명이 희생과 고통을 낳는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혁명은 사회에 좀더 높은 윤리적 토대를 실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믿었다.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토대가 된 이러한 생각은 정치적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문화적 격변도 포괄하고 있었다. G.W. F.헤겔은 20세기 혁명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촉매작용을 했다. 그는 혁명을 인간운명의 완성으로 생각했고, 혁명지도자들은 개혁을 부추기고 실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헤겔의 이론은 가장 영향력 있는 혁명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적 과정을 지배하기 위한 싸움에 주안점을 둔 계급투쟁 이론을 만들 때 헤겔의 추상적 관념을 토대로 이용했다. 마르크스는 인류역사가 정신적으로 발전해 결국에는 지배계급과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사회구조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또한 권력이 사회변화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가 생산수단을 장악해야(이양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결말이 자유롭고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의 결과이며, 이런 사회가 이루어지면 더이상의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의 공산혁명은 '아파라트'(apparat:정부나 당의 관료)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근대 역사가인 크레인 브린턴은 큰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사회경향을 분석했는데, 혁명을 앞둔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가치가 점점 무너지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과 정치적 긴장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치적 권위가 무너지면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필사적으로 공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개혁론자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권위의 실추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그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정치질서가 권위를 잃기 시작함에 따라 다양한 반대세력들은 힘을 축적한다. 정부가 더 불안정해지면 기존질서를 위협하고 있던 반대세력들이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뭉친다. 브린턴은 또한 주요혁명의 여러 단계를 관찰했다. 정부가 무너지면 낙관적인 이상주의 시대가 한동안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히면 이상주의는 차츰 사라진다.

여러 파벌들은 권력다툼을 시작하는데 이 싸움이 내전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하나의 파벌이 이 싸움에 승리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거의 불가피하다. 전체주의적 정권이 지배권을 장악함에 따라 혁명의 목표는 희미해진다. 그러나 원래의 혁명운동이 갖고 있었던 기본적 신조의 일부는 결국 이루어진다.

사회혁명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순수한 정치혁명, 예를 들면 미국혁명 등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후에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

순수한 정치혁명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자만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한 정치혁명은 국민의 뜻과는 상관 없이 일어나고 쿠데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혁명, 미국독립전쟁, 영국 내란, 프랑스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