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스팅스 전투

헤이스팅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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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잉글랜드의 해럴드 2세가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기욤)에게 패배한 전투(1066. 10. 14).

이결과 노르만족은 잉글랜드 통치자로 자리를 굳혔다. 해럴드의 전임자인 참회왕 에드워드는 자식이 없어, 처음에는 친척인 윌리엄을 후계자로 지명한 듯하다. 그러나 임종할 때(1066. 1. 5) 잉글랜드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인 웨식스 백작 해럴드에게 왕국을 물려주었고, 해럴드는 이튿날 왕위에 올랐다. 9월 27일에 윌리엄은 4,000~7,000명의 기병과 보병을 거느리고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잉글랜드로 건너와 서식스의 퍼벤시에 상륙한 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여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해럴드는 10월 2일경에야 윌리엄이 상륙한 사실을 알고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가, 10월 13일경에는 약 7,000명의 병사와 함께 헤이스팅스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의 병사들은 대부분 무장이 허술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농민들이었다. 10월 14일 새벽, 윌리엄은 헤이스팅스에서 북서쪽으로 16㎞쯤 떨어진 산등성이를 점령하고 있는 해럴드의 군대를 향해 진격했다. 윌리엄은 궁수를 맨 앞에, 보병을 그 뒤에, 그리고 3개 집단으로 나눈 기사들을 후위에 배치한 공격 대형을 갖추었다.

해럴드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은 궁수와 기병이 부족했기 때문에, 엄폐물이 많은 산꼭대기에서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해럴드의 부하들은 너무 밀집하여 포진해 있었으므로 윌리엄의 궁수들에게 좋은 과녁이 되었다. 윌리엄의 궁수들은 노르만족 특유의 공격을 시작했지만, 잉글랜드군 투석기와 창 때문에 심한 손실을 입었다. 그래서 윌리엄은 기병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기병대는 두 손에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잉글랜드군 보병에게 호된 공격을 받고 달아났다.

윌리엄은 기병대의 도주를 막고, 하루 종일 잉글랜드군 진지에 기병대의 공격과 화살을 번갈아 퍼부었다. 그는 2차례나 후퇴하는 척하며 상당수의 잉글랜드군을 진지에서 끌어낸 다음, 갑자기 돌아서서 그들을 섬멸했다. 잉글랜드군은 차츰 약해졌다. 해럴드의 형제들 가운데 2명이 죽었고, 늦은 오후에는 해럴드마저 전사했다. 지도자를 잃은 잉글랜드군은 마지막 접전이 끝난 뒤 뿔뿔이 흩어졌다. 이 전투가 끝난 뒤 윌리엄의 군대는 런던을 포위해 고립시켰고, 윌리엄은 이곳에서 12월 25일 왕위에 올라 윌리엄 1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