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

헤브론

다른 표기 언어 Hebron
요약 테이블
위치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남부
인구 160,470명 (2020년 추계)
면적 74.1㎢
대륙 중동
국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약 예루살렘 남남서쪽 해발 930m 지점에 있다. 1923~48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였던 이곳은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뒤 요르단에 합병되었다가 1967년 6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점령된 웨스트뱅크 지역에 속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인 아브라함·이사악·야곱 및 다윗 왕과 연관되어 있어 예루살렘·티베리아스·제파트와 함께 유대교의 4대 성도를 이룬다.
아브라함을 일신교의 창시자이며 마호메트의 선조로 숭앙하는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지로 알려져 있다. 1968년 유대교 정통파들이 유입되면서 다시 유대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헤브론은 농산물 거래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유리와 가죽 제조업이 발달했다.

헤브론(Hebron)
헤브론(Hebron)

예루살렘 남남서쪽 해발 930m 지점에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23~48년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였던 이곳은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뒤 요르단에 합병(1950)되었다가 1967년 6월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점령된 웨스트뱅크(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속한다. 또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인 아브라함·이사악·야곱 및 다윗 왕과 연관되어 있어 예루살렘·티베리아스·제파트(사페드)와 함께 유대교의 4대 성도(聖都)를 이룬다. 아브라함을 일신교의 창시자이며 마호메트의 선조로 숭앙하는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고대 가나안의 왕도(王都)인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앞서'(민수 13:22) 건설되었으며, 곧이어 BC 18세기에 건설된 힉소스 침략자들의 수도 소안은 뒤에 타니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유대인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당시 키럇아르바(히브리어로 '4개의 도시'라는 뜻)라고도 불리던 헤브론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전해진다. 키럇아르바는 성서시대에 동맹을 맺은 이 지역의 4개 정착지를 가리키거나 이 도시가 4개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묘지로 쓰기 위해 히타이트 사람 에브론에게 산 이곳의 막벨라 동굴(창세 23, 히브리어로는 메아리트 하마크펠라)은 후에 가족묘지가 되어 아브라함·이사악·야곱과 그들의 아내 사라·리브가·레아가 묻혔다고 전한다. 출애급 뒤에는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이 방문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뒤에 여호수아가 아얄론 골짜기에서 아모리 왕들의 동맹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때는 아모리 왕들 편에 섰던 이곳의 왕도 이스라엘군에 유리하도록 '태양이 하늘에 계속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군에게 무참히 패배했다고 한다(여호 10).

BC 10세기경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곳에 온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예루살렘을 차지할 때까지 이곳을 수도로 삼아 7년 반을 다스렸다(Ⅱ 사무 2~5). 바빌론 유수 이후에는 에돔인들에게 넘어갔다. 헤로데 대왕(BC 37~4 재위)이 막벨라 동굴 주위에 쌓은 벽의 일부가 비잔틴인·십자군·맘루크인들이 증축한 부분 아래쪽에 남아 있다. 63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1100~1260년에 잠시 십자군에게 정복된 것을 빼고는 계속 이슬람교도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20세기초에 헤브론은 이슬람교도가 주를 이루는 아랍권의 도시였다. 주로 경건한 신학도들로 이루어진 작고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가 이슬람 사회와 공존하고 있었으나 1929, 1967년의 아랍인 폭동으로 대부분 학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1936~39년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떠났다.

오늘날 헤브론은 농산물 거래시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유리와 가죽 제조업이 발달했다. 막벨라 동굴 꼭대기에는 거대한 모스크인 알하람 알이브라히미 알칼릴('친구 아브라함의 신전'이라는 뜻)이 세워져 있다. 1967년 6일 전쟁 뒤 이 동굴 무덤들은 1267년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가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참배금지령을 내린 지 700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예배자들에게 공개되었다. 오늘날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 양편이 모두 이곳에서 예배를 보고 있으나 위쪽의 모스크만은 이슬람교도들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1968년 유대교 정통파들이 유입되면서 다시 유대인 사회가 형성되었고, 1970년 이스라엘 정부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이들을 위한 새로운 주택건설사업이 1970년대초에 시작되었다. 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막벨라 동굴과 시 바로 북서쪽에 있는 아브라함의 오크(히브리어로는 에셸 아브라함) 같은, 초기 유대 족장들의 삶과 연관된 장소들을 찾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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