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

한설야

다른 표기 언어 韓雪野 동의어 한병도, 韓秉道
요약 테이블
출생 1900. 8. 3, 함남 함흥
사망 1962(?)
국적 북한

요약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 문학을 건설하며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

1920~30년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을 중심으로 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가로 활동하다 8·15해방 후 북한문학의 건설자로서 김일성 및 당 정책과 관련된 문학활동을 했다. 본명은 병도(秉道). 필명은 만년설·한형종(韓炯宗)·김덕혜(金德惠)·윤영순(尹英順)·H생.

함흥 교외 나촌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함흥보통학교를 다녔다.

서울 경성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함흥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했다. 함흥법학전문학교에 진학했으나 교내사건에 연루되어 퇴학당하고 베이징[北京]의 익지영문학교에 들어가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1921년 일본으로 유학, 일본대학 사회학과를 다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여 북청사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집안의 몰락으로 만주 푸순[撫順]으로 이주하여 탄광 등지를 돌아다니며 노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1925년 KAPF에 가입한 뒤 1927년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에는 함흥에서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기도 했다. 1931년 〈대조〉·〈신계단〉의 편집을 맡았다가 1933년 잡지가 종간되자〈조선일보〉 편집기자 생활을 했다. 1934년 8월 KAPF 제2차 검거 때 체포되었다가 1935년 12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귀향하여 서점·인쇄소·극장 등을 경영하면서 창작에 전념했다. 해방 직후 이기영과 함께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을 조직하여 임화·김남천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대항하다 두 단체가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합쳐지자 바로 월북했다. 북한에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결성 초기부터 주도적인 활동을 전개해 1962년까지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교육문화상, 당중앙위원 등 고위직을 역임했다. 1962년말 복고주의자·자유주의자로 몰려 숙청된 후 문단 및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최근 복권되어 다시 주요 작가로 거론되고 있다.

문학세계

1925년 1월 〈조선문단〉에 단편 〈그날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초기에 발표한 〈합숙소의 밤〉·〈인조폭포〉·〈과도기〉 등은 자신의 만주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만주 유민들이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향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이 세 작품은 '귀향'의 모티프에 의해 서로 연관성을 지닌다.

특히 〈과도기〉는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농민들이 일제의 산업정책으로 노동자로 변신하는 현실을 그려냈는데, 임화는 이 작품을 "그 양식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실로 그 정신에 있어서도 분명히 새 시대의 문학"이라고 호평했다. 이후 한동안 공장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으며, 〈과도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씨름〉이나 〈공장지대〉·〈삼백육십오일〉 등이 그런 유이다. 이 작품들은 식민지적 산업화과정에서 고향을 등졌던 이농민이 귀향하여 노동자로 편입되는 과정과 노조활동을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그려내 신경향파시기를 끝맺게 한 소설사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어 일제 말기에 〈황혼〉·〈청춘기〉·〈마음의 향촌〉·〈탑〉 등의 장편소설과 〈탁류〉 3부작 등의 농민소설, 〈임금 林擒〉·〈철로교차점〉·〈이녕 泥寧〉 등의 지식인 소설을 발표했다. 〈황혼〉(1936)은 온갖 고난 끝에 선진적인 노동자가 되는 농촌여성 출신 지식인 여순과 이념을 지녔으나 방황 끝에 무기력한 지식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부잣집 아들 경재의 삶을 그렸다. 작가는 이러한 연인의 대비를 통해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대부분의 소시민적 지식인들이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청춘기〉에서는 주인공 태호와 은희의 애정 갈등을 중심으로 소시민적 지식인이 현실을 모색하며 겪는 갈등과 변혁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한말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를 다룬 〈탑〉은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김남천의 〈대하〉에 비견되는 작품이다.

한편 그는 평론에도 주력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성립과정과 당위성을 드러낸 〈계급대립과 계급문학〉(1927)을 발표한 데 이어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1928)·〈조선문단운동의 당면과제〉(1929)에서 이북만·박영희를 비판했고, 〈사실주의 비판〉(1931)에서 작품 창작보다 조직을 통한 실천을 주장했다. 북한에서 조국 해방을 그린 〈대동강〉(1955)과 함경도 성진 지방의 농민운동과 반일투쟁을 그린 〈설봉산〉(1956)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그밖에 〈발전 도상에 오른 전후의 조선문학〉(1955) 등 당의 문예정책을 해설하고 KAPF를 기념하며 남한 문단에 보내는 비평과 정치논설 형태의 정론작품을 많이 썼다.

소설집으로 〈청춘기〉(1939)·〈귀향〉(1939)·〈황혼〉(1940)·〈한설야 단편선〉(1940) 등이 있고,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을 그린 〈역사〉로 북한에서 인민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