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다른 표기 언어 티에폴로 , Givoanni Battista Tiepolo
요약 테이블
출생 1696년 3월 5일, 베네치아
사망 1770년 3월 27일, 마드리드
국적 이탈리아

요약 17~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이삭의 희생>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해운업에 종사했던 아버지 덕분에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그레고리오 라차리니에게 그림의 기본기를 익혔고 초기 작품들은 조반니 바티스타 피에체타의 영향을 받았다. 티에폴리는 극적인 작품들과 이야기식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형태의 그림을 그렸는데 말년에는 베르사유의 저택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고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티에폴로의 작품에는 당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끼기 힘든 심오함과 우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 비평가들은 그를 모든 시대에 걸친 위대한 화가로 꼽고 있다.

목차

접기
  1. 초기생애
  2. 후기생애
  3. 평가

초기생애

해운업에 종사했던 티에폴로의 아버지는 1697년 아내와 5명의 자녀들에게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재산을 남겨놓고 죽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장식적이고 전통적인 경향을 지닌 화가 그레그리오 라차리니에게 보냈으며, 티에폴로는 그에게서 그림의 기본기를 익혔다. 그는 명암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방법을 기초로 한 음울한 분위기의 양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순수한 극적 감정과 결합된 이 강한 명암법은 그가 산타마리아데이데렐리티 교회, 즉 오스페달레토에 그린 최초의 공식적인 작품 〈이삭의 희생 The Sacrifice of Isaac〉(1716)에서 볼 수 있다.

1717년 베네치아 화가 길드의 인명부에는 티에폴로의 이름이 독립화가로 등장한다.

이 시기에 티에폴로는 웅장한 구도의 〈카르멜로의 성모와 연옥의 영혼들 Madonna of Carmelo and the Souls of Purgatory〉(1720경)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베네치아파 화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피아체타의 대담하고 입체적인 인물묘사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미술 교육은 복잡하고 다양하여 베네치아와 외국의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두 섭렵했으며, 또한 16세기의 주제에서 따온 그의 에칭 판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옛 화가들의 작품도 연구했다. 티에폴로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산타바르바라부라노 예배당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rucifixion〉(1723~24)와 같은 극적인 작품들에서부터 현재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4개의 신화를 주제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식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형태묘사와 분위기를 터득했다.

그는 젊은 시절 베네치아를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들이 유럽 전역에서 제작하고 있던 대규모의 장식화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의 방법을 이해했다. 그의 성숙한 기법과 독창적인 형태는 그의 초기 프레스코인 스칼치 교회의 〈성녀 테레사의 영광 Glory of St. Theresa〉과 팔라초 산디포르토(지금의 치폴라토)의 천장에 그린 〈웅변의 힘 The Force of Eloquence〉에 이미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티에폴로는 30세쯤인 1726년 이후에 우디네의 팔라초 아르치베스코빌레에 프레스코를 그리면서부터 비로소 완전히 성숙한 표현법에 도달했다.

이 무렵이나 또는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티에폴로는 돌핀 가(家)의 베네치아 저택을 위해 멜로드라마풍의 역동적인 양식으로 로마의 역사에 관한 10개의 장면을 그렸다. 이 시기의 풍부한 색채는 고전적인 에피소드를 거의 풍자적으로 미묘하게 재현한 2점의 〈캄파스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아펠레스 Apelles Painting the Portrait of Campaspe〉(몬트리올 미술관, 런던 국립미술관)와 같은 작은 그림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730년대 무렵 티에폴로의 명성은 베네치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1731년 밀라노로 초청되어 팔라초 아르킨토(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됨)와 팔라초 두냐니를 장식했는데, 팔라초 아르킨토에는 지금도 경탄을 자아낼 만한 작은 원형들이 남아 있는 신화적인 장면들을 그렸으며, 팔라초 두냐니에는 바로크 양식의 배경을 바탕으로 역사에서 따온 우아한 분위기의 일화들을 그렸다. 그해 가을 그는 베르가모에 있는 콜레오니 예배당의 장식에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들을 묘사했고(1732), 이 작품에서 그의 혁신적인 양식을 이루는 활기찬 풍경을 배경으로 집어넣었다.

1734년 가을 티에폴로는 자신의 말대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으며, 비첸차 근처의 비론에 있는 빌라 로스키(지금의 칠레리 달 베르메)를 장식했는데,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유명하고 매우 아름다운 소묘를 여러 점 그렸다.

후기생애

1740~50년의 10년 동안 티에폴로는 1730년부터 피아체타·카날레토·구아르디 같은 베네치아파 회화에서 재발견한 아주 밝은 색채와 형태를 사용하여 실험적으로 그려온 세속적인 주제를 기초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당대 예술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인 알가로티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티에폴로는 지방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았지만, 알가로티와 만나면서부터 당대의 고전적인 기호에 친숙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이 시기의 작품들, 즉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The Banquet of Cleopatra〉(1744,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와 모스크바 근처 아르항겔스크에 있는 2점의 그림(1747) 및 베네치아의 팔라초 라비아에 있는 프레스코(1750 바로 직전)에서 묘사한 세계는 고대의 환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연회(The Banquet of Cleopatra)
클레오파트라의 연회(The Banquet of Cleopatra)

이러한 이미지는 형식적으로 베네치아 르네상스기의 대가인 베로네세에게서 따온 것이며 18세기에 유행한 고전적인 주제의 멜로드라마적 성향과 일맥상통한다.

티에폴로는 그의 미술적 재능이 완숙해진 생애의 가장 행복한 시기에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레지덴츠의 방들을 장식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1750년 그의 두 아들인 23세의 조반니 도메니코와 14세의 로렌초를 데리고 그곳에 갔다.

티에폴로는 독일에 머무르는 동안 베네치아에서는 거의 작품을 볼 수 없었던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의 미술가들과 알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낭만적이고 시적인 주제도 다루어 리날도와 아르미다의 이야기를 묘사한 4점의 웅장한 캔버스화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시인 타소의 작품에서 끌어낸 일화들을 묘사하기도 했는데, 이것들은 현재 시카고 미술연구소에 있다. 티에폴로는 스페인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으로 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는 베네치아의 귀족가문인 피사니가(家)의 구식이긴 하지만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르사유 저택을 장식하는 일을 맡았다.

티에폴로의 웅장한 〈피사니가의 숭배 Apotheosis of the Pisani Family〉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나란히 선 어린아이들의 초상화와 장식 전체에 감각적 실존주의를 느끼게 해주는 남녀 사티로스들을 그린 프리즈이다. 티에폴로는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독특한 예로는 〈행정장관 조반니 퀘리니 (?) Procurator Giovanni Querini (?)〉(베네치아 퀘미니 스탐팔리아 미술관)라는 훌륭한 초상화가 있는데, 이것은 한 인간을 넘어서 몰락할 운명에 처해 있는 귀족정치 자체를 대변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정치적 안정은 1756년의 7년전쟁으로 깨지고 말았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분쟁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 군주제의 영광을 높이려고 티에폴로를 마드리드로 초청하여 왕궁의 장식을 맡겼다.

1762년 티에폴로는 활발하게 공동작업을 해온 도메니코와 로렌초를 데리고 마드리드에 갔다. 1764년 그들은 이 장식을 완성했는데, 여기에서 아버지인 티에폴로는 3개의 천장에 그릴 복잡한 주제들을 계속 구상했으며 부분적으로는 직접 그리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이 주제들은 건축의 주위환경과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완성된 작품에서는 원래의 스케치에서 의도한 색채의 생동감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 군주제의 힘 The Power of the Spanish Monarchy〉·〈스페인 군주제의 숭배 The Apotheosis of the Spanish Monarchy〉·〈비너스 신전으로 인도된 아이네아스 Aeneas Led to the Temple of Venus〉에서 티에폴로는 색채를 풍부하게 배합함으로써 대담하고 새로운 원근법을 적용했다. 스페인 왕궁을 지배하고 있던 엄숙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티에폴로는 아란후에스를 위해 그린 종교화와 개인적인 후원자들을 위해 그린 〈이집트로의 피신 Flight into Egypt〉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낭만적이고 우울한 내적 감정에 기초하여 빛과 색의 표현을 중심으로 한 시적인 미술을 보여주었다.

그 천장 장식은 티에폴로가 마지막으로 맡은 주요한 작업이었다.

평가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들에는 모두 당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심오한 느낌을 주는 우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

오늘날 비평가들은 그를 모든 시대에 걸친 위대한 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