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리

파올리

다른 표기 언어 Pasquale Paoli
요약 테이블
출생 1725. 4. 26, 코르시카 스트레타디모로살리아
사망 1807. 2. 5, 런던
국적 코르시카

요약 코르시카의 정치가·애국지사.

제노바의 코르시카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계몽정치와 개혁을 실시했다. 1735년부터 제노바에 대항해 코르시카인들을 이끌었던 자친토 파올리의 아들로, 1739년 망명을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나폴리로 갔다. 그곳의 사관학교에서 공부하고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한 계속적인 투쟁을 준비했다.

1755년 코르시카로 돌아와 제노바파를 누르고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민주적인 헌법에 따라 건설된 행정부에 선출되었다. 그뒤 9년 동안 계몽적 전제주의 원칙을 내세워 우선 뿌리 깊은 대립을 일소하고 질서와 정의를 정착시켰으며, 다음에는 광업을 장려했고, 해군함대를 창설했으며, 국립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해 코르시카를 변모시켰다. 동시에 전쟁을 계속했는데 처음에는 제노바와 싸우다가 1764년부터는 제노바의 동맹국인 프랑스와 싸웠다. 프랑스는 1768년 코르시카를 매입, 침입해 들어와 1769년 민족주의자들을 패배시켰다.

그는 영국으로 피신해 조지 3세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이후 20년 동안 런던에서 살았다. 프랑스 혁명중에 중장 겸 군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790년 7월 코르시카로 돌아갔으나 1793년 프랑스와 결별하고 다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794년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프랑스인들을 몰아냈고 그뒤 조지 3세에게 코르시카 통치를 제의했다. 조지 3세는 길버트 엘리엇 경을 부왕으로 파견했고 엘리엇은 파올리가 아닌 포초 디 보르고를 수석고문관으로 채택했다. 파올리는 실망했으나 내분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1795년 은퇴해 영국으로 가서 영국 정부가 주는 연금을 받으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