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 왕가

튜더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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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5명의 잉글랜드 왕을 배출한 웨일스 출신의 잉글랜드 왕가.

튜더 왕가
튜더 왕가

튜더가에 속하는 잉글랜드 왕들로는 헨리 7세(1485~1509 재위)와 그 아들인 헨리 8세(1509~47 재위), 그리고 헨리 8세의 자식들인 에드워드 6세(1547~53 재위)와 메리 1세(1553~58 재위),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재위)가 있다.

튜더 가문의 기원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왕가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 장미전쟁 당시 헨리 5세 및 헨리 6세와 함께 랭커스터 가문 편에서 싸웠던 웨일스 사람 오언 튜더(1400경~61)에 의해서였다. 그는 헨리 5세의 미망인으로 랭커스터 가문 편이었던 카트린 드 발루아와 결혼했으나 모티머스 크로스 전투(1461)에서 요크가가 승리한 뒤 참수당했다. 그의 맏아들인 에드먼드(1430경~56)는 헨리 6세에게서 리치먼드 백작위를 받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했으며 마거릿은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곤트의 존의 증손녀로서 아득한 서열이지만 왕위계승권을 지니고 있었다. 에드먼드가 죽은 뒤에 태어난 외아들 헨리 튜더는 1485년 요크 가문 출신 왕 리처드 3세를 보즈워스에서 공격해 무찔렀다.

그는 헨리 7세로서 왕위를 요구했는데 이는 정당한 권리에 의한 것이며 전투에서 승리를 내려준 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이며 요크가의 계승자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했다. 튜더가의 장미 문장은 랭커스터가의 빨간 장미를 요크가의 흰 장미 위에 포개어놓은 것으로 양가의 결속을 상징하고 있다.

튜더 왕조 시대에는 헨리 8세와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 단절(1534)과 이에 따른 영국 종교개혁의 시작과 같은 큰 사건이 있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여러 번의 반전과 시련을 겪은 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영국국교회의 확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튜더 왕조 시대에는 영국에 르네상스가 꽃피었으며,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한 세대에 걸친 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아일랜드 반란군을 무찔렀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이 확고해졌으며, 잉글랜드 자체의 통일성도 보장되었다.

헨리 8세는 국회제정법(1544)과 자신의 유언을 통해 3명의 자식들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가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도록 했으며 만약 이들이 후손이 없이 죽을 경우 왕위는 누나인 마거릿의 자식들에게 돌아가기 전에 먼저 여동생인 메리의 자식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오른 뒤 비첨 경 에드워드 시모어(메리의 후손)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마거릿의 후손) 중 누구를 왕위계승자로 선택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헨리 8세의 뜻과 왕위계승법에 의하면 시모어가 계승자이지만 엄밀하게 왕위계승을 따질 경우에는 제임스 6세가 정당한 계승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스코틀랜드 왕을 왕위계승자로 택했고 그는 제임스 1세로서 잉글랜드가 아닌 영국(그레이트브리튼)의 왕위에 올라 스튜어트 왕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