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

테살로니키

다른 표기 언어 Thessaloniki
요약 테이블
위치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 테살로니키 주
인구 812,166명 (2020년 추계)
면적 19.29㎢
언어 그리스어
대륙 유럽
국가 그리스

요약 그리스 북부교구청 소재지이고, 주의 행정중심지이다. 테르마이코스콜포스 만의 머리부분에 있는 칼키디키 반도 서쪽 면에 있다.
BC 316년에 세워진 테살로니키는 146년 후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6, 7세기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에게 여러 번 공격을 당했지만 비잔틴 제국시대에 번영을 누렸다. 수세기 동안 불가리아인, 노르만족 등의 야만적인 침략을 겪었으며, 1246년 부흥한 비잔틴 제국에게 넘어갔다. 1423년 베네치아에게 양도되었으나 1430년 투르크의 술탄 무라드 2세가 점령했다. 이후 그리스 군대에게 함락되어 1913년 그리스 왕국에 양도되었다.
테살로니키에는 그리스 시대의 수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오늘날 이곳은 공업과 산업 중심지로 중요하다. 주류·가죽·섬유·카펫·벽돌·타일·비누 등을 생산한다.

테살로니키(Thessaloniki)
테살로니키(Thessaloniki)

그리스 북부교구청 소재지이고, 주의 행정중심지이다. 테르마이코스콜포스 만의 머리부분에 있는 칼키디키 반도 서쪽 면에 있다. 공업과 산업 중심지로 중요하며 인구 면에서 아테네, 항구로서 피라이우스 다음 가는 제2의 도시이다. 갈리코스·바르다르 강에 의해 형성되는 삼각주 평야가 내려다보이며, 코르티아티스 산(1,201m) 기슭 언덕과 경사면에 있다.

BC 316년에 세워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누이 이름을 딴 테살로니키는 146년 후에 로마 속주였던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사도 바울로가 쓴 서신 2통이 이곳 주민들 앞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곳에서 최초로 주교가 된 가이우스는 바울로와 신앙을 함께 하던 사람이었다. 6세기와 7세기에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에게 여러 차례 공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제국시대에 번영을 누렸다. 732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레오 3세(717~741 재위)가 성상(聖像)을 금지한 지 2년 만에 교황의 지배권으로부터 분리시켜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 종속되도록 했다(성상파괴논쟁). 성상파괴주의자인 레오 황제와 그 승계자들이 다스리는 동안 테살로니키는 예배시 성상 사용을 옹호했으며, 이들 예술품 일부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뒤이은 수세기 동안 불가리아인, 노르만족, 기타 다른 민족들이 침략해서 많은 야만적인 행위들을 주민에게 저질렀다.

그리고 1246년 부흥한 비잔틴 제국에게 넘어가기까지 여러 다른 지배자에게 충성을 강요당했다. 투르크인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다가 1423년 베네치아에게 양도되었으나 1430년에 투르크의 술탄 무라드 2세에게 점령되었다. 당시 끔찍스런 대학살이 있었다. 이때 심하게 줄어들었던 인구는 그 세기가 끝날 무렵 스페인에서 쫓겨 들어온 2만 명의 유대인들로 인해 다시 늘어났다. 이곳은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계속 남아있다가 그리스 군대에게 함락되어 부쿠레슈티 협정(1913)에 따라 그리스 왕국에 양도되었다.

테살로니키는 1908년 투르크 혁명을 수행한 청년 투르크 당원들의 활동 중심지였다. 1차 발칸전쟁중인 1912년에 그리스에게 항복했으며, 1915~18년 터키 해협에서 벌였던 연합군 작전 때 기지로 쓰였다. 1916년 그리스 총리는 불가리아와 독일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테살로니키에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1941년 독일에 함락되었는데 독일 점령 동안에 도시에 있던 6만여 명의 유대인 대부분이 추방·몰살당했다.

이곳에서는 그리스 시대의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거대한 돌로 된 로마식 아치(1세기)는 1867년에 파괴되었으나 4세기에 벽돌과 대리석으로 세운 갈레리우스 황제의 아치는 지금도 남아 있다.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 재위) 때부터 도시와 위쪽 성채를 둘러싸던 벽은 복구되어 남아 있다.

테살로니키에서는 비잔틴 교회 건축물들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둥근 천장으로 된 아이아소피아 교회당(8세기초)은 1585~89년에 이슬람교 사원이 되었다. 시(市)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아이오스디미트리오스(성 데메트리우스) 교회당은 5세기초에 지은 것으로 1926~48년에 전부 재건되었다. 파나기아 칼케온(1028 또는 1042)은 그리스의 뛰어난 십자가 양식으로 후세에 많은 비잔틴 교회 건축물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성 게오르기우스 교회당과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당과 같이 5세기에 세워진 호시오스다비드 교회당은 작은 규모로서 초기 모자이크화가 유명하다.

오늘날 테살로니키는 그리스의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는 철도 기착지이다. 이곳 항구는 1901년에 개방되었다. 크롬, 망간, 가공·미가공 농산물들이 수출되고 있다. 1960년대에 정유공장·석유화학공장·제강소가 포함된 대규모 공업단지가 건설되면서 테살로니키는 주요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주로 생산되는 것은 주류·가죽·섬유·카펫·벽돌·타일·비누·밀가루 등이다.

그리스 정교회 수도 대주교와 그리스 제3군단의 사단본부가 있다. 대학교(1925 창립)와 아메리칸 칼리지, 독일학교, 프랑스 리세(대학예비교육을 하는 고등학교)가 있다. 1890, 1898, 1910, 1917년에 화재로 손실을 입었으며, 197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

지도
테살로니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