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상 논쟁

성화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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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725~843년 동로마 제국에서 성상(icons)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분쟁.

성상파괴론자들은 〈구약성서〉 십계명(출애 20 : 4)에서 형상을 만들어 공경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과, 우상숭배로 전락할 가능성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성화상 공경에 반대했다.

성상 옹호론자들은 성상의 상징적인 성격과 피조물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상(像)을 만들고 공경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대했는데도 성상을 사용하는 것은 특히 로마 제국의 동부지역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6세기 말엽과 7세기에 성상은 교회가 공식 권장하는 공경 대상이 되었고, 성상이 생명을 갖고 있다는 미신적인 신앙을 내포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행들에 대해 특히 소아시아에서는 반발이 점차 거세졌다.

726년 동로마 황제 레온 3세는 공식적으로 성상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고, 730년 성상을 사용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이 조치로 성화상을 공경하는 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이 박해는 레오의 계승자 콘스탄티노스 5세(741~775 재위) 때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787년 여황제 이리니가 니케아에서 소집한 제7차 세계 공의회는 성상파괴주의를 단죄하고 성상 사용을 재확립했다. 814년 레온 5세가 즉위한 뒤 다시 권력을 잡은 성상파괴론자들은 공의회(815)에서 성상 사용을 다시 금지시켰다. 성상파괴론자들이 권력을 잡은 이 2번째 기간은 842년 황제 테오필로스가 죽음으로써 끝났다.

843년 그의 미망인은 최종적으로 성화상 공경을 회복시켰으며,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이 사건을 정교 주일로 기념한다(→ 정교 주일, 니케아 공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