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아 레기스

쿠리아 레기스

다른 표기 언어 Curia Regis 동의어 Aula Regis, 왕회, 왕실회의, 왕실법정

요약 노르만 정복시기(1066)부터 13세기 말엽까지 영국의 사법을 담당했던 위원회와 법원(→ 잉글랜드).
Aula Regis 또는 왕회, 왕실회의, 왕실법정이라고도 함.

그 구성과 기능은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달랐으며, 당시의 행정·입법·사법 기능은 나중에 구별된 것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쿠리아 레기스는 상급법원이라고 할 수 있는 추밀원(privy council)과 내각평의회(cabinet)의 맹아적 형태였다. 초기의 쿠리아 레기스는 국왕의 일반평의회(commune concilium), 즉 국왕의 직속수봉자(直屬受封者)로 구성된 봉건회의였다(→ 영국법).

헨리 1세 치세기(1100~35)에 쿠리아 레기스는 보다 명확한 특징을 갖게 되었는데, 그 구성원은 왕실 관리와 왕의 친구 및 수행원들이었고 구성원수는 적었다. 따라서 이는 사실상 왕국평의회의 위원회였고, 왕의 사법적 집무와 무한한 왕의 권위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쿠리아 레기스는 동시에 재정업무도 담당했고, 이로써 후일 재무법원(curia regis ad scaccarium)이 생기게 되었다.

쿠리아 레기스의 구성원들은 '판사'라고 불렸으며, 왕의 부재시에는 수석판사가 주재했다. 헨리 2세는 보다 많은 조치를 취했다. 1178년에 헨리 2세는 쿠리아 레기스의 판사 가운데 5명을 골라 특별법원을 설치했으며, 이들 5명의 판사는 쿠리아 레기스의 다른 판사들과는 달리 쿠리아 레기스를 따라 여기저기 옮기지 않고 한 곳에 있어야 했다. 그후 왕좌법원(curia regis de banco)이 세워졌으며, 민소법원의 설치가 마그나카르타에 규정되었다.

헨리 2세(Henry II)
헨리 2세(Henry II)

또한 대법관법원(형평법법원)도 쿠리아 레기스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에드워드 1세 재위시(1272~1307)에는 쿠리아 레기스의 행정적·자문적 업무를 왕의 비밀위원회가 담당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추밀원으로 되어 쿠리아 레기스와 관련을 맺게 되었고 추밀원은 다시 내각평의회로 발전했다(→ 최고법원, 여왕좌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