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프레리 드 라 파시옹

콩프레리 드 라 파시옹

다른 표기 언어 Confrerie de la Passion

요약 종교극을 공연하기 위해 파리의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이 모여 구성한 아마추어 극단.
(영). Confraternity of the Passion.

1402년 샤를 6세는 이 극단이 파리에서 신비극을 상연하도록 허락했고, 그들의 시즌 공연은 높은 명성을 누렸다. 1518년 그들의 특권은 새롭게 갱신되었는데 이 극단의 단원 이외에는 누구도 연극을 공연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파리에서 공연되는 모든 연극에 대해 독점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몇 년 간 그들의 공연은 종교적 주제를 자유분방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항의하던 교회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 성서 외전에서 취한 소재를 첨가해 연극을 길게 연장시키고, 점잖지 못한 소극(笑劇)과 팬터마임을 연극 속에 도입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또한 연극 상연 기간을 6~7개월 정도까지 연장하여 사람들을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파문 때문에 이 극단은 공연장에서 쫓겨나 부르고뉴관이라는 새로운 극장을 세웠다. 이 극장은 1548년에 완공되었으나, 그해 바로 이 극단의 종교극 공연이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모든 연극활동을 포기하면서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온 외국의 순회극단들에게 극장을 임대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부르고뉴관은 임대계약을 맺은 극단들과의 빈번한 분쟁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영구적인 계약 극단을 얻게 되었다.

이 극단은 1673년까지 부르고뉴관에 남아 있다가 그곳을 떠난 후 나중에 코메디 프랑세즈를 결성하게 되는 다른 극단과 병합했다. 이 극단은 1595년까지도 파리 연극계를 독점하면서 다른 극단의 직업적 활동을 방해했으나 1595년 생 제르맹 축제와 생 로랑 축제 때는 지방 배우들에게 공연이 허락되기도 했다. 이 극단은 1676년 칙령에 의해 마침내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