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다른 표기 언어 카프카 , Franz Kafka
요약 테이블
출생 1883. 7. 3, 프라하
사망 1924. 6. 3, 빈 근처 키를링
국적 체크/독일

요약 체코 출신으로 독일어로 작품을 쓴 소설가.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갑충으로 변하는 내용을 다룬 <변신>과 같이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썼다. 사후 출판된 소설 가운데 특히 〈심판 〉〈성〉 등은 20세기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작품이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생애
  3. 카프카의 작품
카프카 (Franz Kafka)
카프카 (Franz Kafka)

개요

체코(당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작가. 독일어로 작품을 썼으며,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보였다. 사후 출판된 소설 가운데 특히 〈심판 Der Prozess〉(1925)·〈성 Das Schloss〉(1926) 등은 20세기 인간의 불안과 소외를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생애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상인이었던 헤르만 카프카와 율리에 뢰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카프카는 죽을 때까지 맏이로서의 역할을 의식하며 살았다. 가족 가운데 그와 제일 가까웠던 사람은 세 여동생 중 막내인 오틀라였다. 카프카는 영적이고 이지적이며 경건하고 유대의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기벽(奇癖)이 있는 괴짜들이며, 감성적인 기질에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섬세함을 지닌 어머니쪽 혈통과 강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특별히 어머니와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단순한 여인으로, 위압적이고 화를 잘 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고된 사업을 거들면서,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아무 이익도 없고 건강을 해칠지도 모르는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카프카는 부모의 몰이해 속에 '몽상적인 내면 생활'을 기록해갔다.

아버지의 형상은 카프카의 존재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으며, 사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유형으로 등장하고 있다. 물질적인 성공과 사회적인 출세 외에는 숭배할 것이 없는, 이 거칠고 실질적이며 오만한 상점주인이자 가부장인 아버지는 카프카의 상상 속에서 거인족의 일원으로, 무시무시하고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혐오스러운 폭군으로 등장한다.

1919년에 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Brief an den Vater〉는 자서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시도였는데, 실제 주소로 부친 편지는 결코 아니었다. 여기서 카프카는 그의 내면에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을 주입시켜준 위압적인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에게 묶인 끈을 잘라버리고 스스로 결혼하여 자신 또한 한 아버지가 되는 평범한 삶에 실패하여 문학으로 도피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의 의지를 꺾어버렸다고 느꼈으며, 이런 아버지와의 갈등을 직접 반영한 작품이 〈판결 Das Urteil〉(1916)이다. 사람을 현혹할 정도로 맑고 간결한 산문으로 씌어진 카프카의 소설들은 압도적인 힘과의 절망적인 투쟁을 그리고 있는데, 미지의 힘은 〈심판〉에서처럼 희생자를 짓궂게 괴롭히며 심문하기도 하고 〈성〉에서처럼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추구하고 갈망하지만 허사로 만든다.

그렇지만 카프카의 불안과 절망의 뿌리는 그가 성인이 되어 더욱 가까이 지내고자 했던 아버지와 가족과의 관계에 있지 않았다. 그의 절망의 원천은 그가 아끼던 친구들, 사랑한 여인들, 싫어한 직업, 살아간 사회 등이 모든 인간존재와 그가 진정한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한 신과 진정한 친교를 맺지 못한 채 궁극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의식에 있었다.

아버지는 자칭 동화된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공동체의 예배와 의례를 마지못해 지킬 뿐이었으므로 카프카는 언어면에서나 문화면에서나 독일인이었다.

소심하고 죄의식을 지닌 온순한 소년이었던 그는 초등학교에서도 학구적인 엘리트를 양성하는 규율이 엄격한 고등학교인 알트슈테터 슈타츠 김나지움에서도 모범생이었다. 교사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이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기계적인 암기식 학습, 고전어들을 강조하면서 인문과학을 비인간화시키는 교과과정에 대한 반란이 일고 있었다.

카프카가 기성사회에 대해 명백한 적대감을 표명한 것은 청년이 되어 자신을 사회주의자·무신론자라고 선언했을 때였다. 성인이 되자 줄곧 한정적이긴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공감을 표시했고,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체크 무정부주의자 회합에 참석했으며 말년에는 사회주의화된 시오니즘에 뚜렷한 관심과 공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본질적으로는 수동적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방관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유대인이기에 프라하의 독일인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었고, 현대 지식인이기에 유대의 유산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었다. 체크의 정치적·문화적 열망에 공감했지만 독일 문화에 동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공감은 억눌린 채 드러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고립과 근거 상실로 카프카는 일생 동안 개인적으로 불행하게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프라하에 있는 일부 독일계 유대 지식인·문학자 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1902년 막스 브로트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이 이류 문학예술가가 카프카의 친구들 중 가장 가깝고 그를 염려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결국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글을 장려하고 구제하고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전기작가로 부상했다.

이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카프카가 프라하대학교에서 별 관심 없이 법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1906년 박사학위를 받고 1907년 한 보험회사에 상근하기 시작했는데, 이 일반보험회사의 긴 근무시간과 엄격한 요구사항들 때문에 카프카는 글쓰기에 몰두할 수 없었다. 1908년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보험회사라는 준(準)국가기관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폐병으로 중간에 병가를 얻어야 했던 1917년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마침내 죽기 2년 전인 1922년 연금을 받으며 은퇴했다. 이 직장에서 그는 일에 열성적으로 매달렸으며 사장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그를 좋아했다.

사실 카프카는 간명하고 지적이며 유머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낮에는 일상적인 회사 일을 해야 했고 그때문에 주로 밤에만 글을 쓸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고된 이중생활을 극도로 괴로운 고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에게는 보다 내밀한 내면의 사적 관계들이 노이로제를 일으킬 만큼 혼란스러웠다.

그의 열등감과 모순된 성격에서 비롯된 갈등의 성향은 성적 관계에서도 표출되었다. 그의 금욕적 태도는 펠리체 바우어와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방해했는데 그녀와 2번이나 약혼했다가 결국 1917년 헤어지게 되었다. 나중의 밀레나 예젠스카 폴라크에 대한 사랑도 역시 장애에 부딪혔다. 건강이 나빠진데다 회사 일이 그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1917년 폐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때부터 자주 요양원 신세를 져야 했다.

1923년 카프카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갔다.

여기서 사회주의자인 젊은 유대 여성 도라 디만트와의 우정으로 삶의 용기를 얻었지만 1924년 겨울에 결정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베를린 체류는 짧은 기간으로 끝났다. 도라 디만트와 함께 프라하에 잠시 머물렀다가 빈 근처의 한 요양원에서 죽었다.

카프카의 작품

전위문학을 주도하던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카프카는 마지못해 생전에 쓴 글 가운데 일부를 출판했다.

여기에 속하는 것이 〈어느 투쟁의 묘사 Beschreibung eines Kampfes〉(1936)에 수록된 2편의 소설(1909)과 단편 산문집 〈고찰 Betrachtung〉(1913), 성숙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1912년에 씌어진 장편 〈판결〉·〈변신 Die Verwandlung〉(1915)·〈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1919)와 단편집 〈시골의사 Ein Landarzt〉(1919)이다. 간결하고 투명한 문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4편의 후기 소설집 〈굶주린 예술가 Ein Hungerkünstler〉(1924)는 출판을 준비했으나 사후에야 발행되었다.

변신(Die Verwandlung)
변신(Die Verwandlung)

실제로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에 불안을 느껴 죽기 전에 미발표 원고들을 전부 폐기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소설 〈심판〉·〈성〉·〈아메리카 Amerika〉를 각각 1925, 1926, 1927년에 출판했다. 단편집 〈만리장성을 쌓을 때 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는 1931년 출판되었다. 1904년경에 쓰기 시작한 〈어느 투쟁의 묘사〉·〈고찰〉 등과 같은 초기작품은 후기작품보다 양식면에서 구체적인 표현법을 쓰고 구조면에서 더 부조리하지만 그래도 특유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는 작중인물들은 정상적·일상적인 논리를 비웃는 은폐된 논리를 따르며, 그들의 세계는 괴기하고 폭력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밖으로 분출해나온다. 등장인물들은 헛되이 세상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구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믿고자 방법을 묻는 고뇌의 대변자에 지나지 않았다.

카프카의 많은 우화들은 정상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종잡을 수 없이 불가해하게 뒤섞인 혼합물이다.

그러나 때때로 기묘함은 문학적 또는 표현장치의 소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테면 병리상태의 기만성에 현실의 지위가 부여되거나, 일상적인 발언의 은유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결〉에서는 아들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늙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자살하며, 〈변신〉에서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기괴하고 흉칙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한 아들이 가족의 수치감과 무시뿐만 아니라 자책 어린 절망감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간다.

더욱 불가해한 이야기들도 많다.〈유형지에서〉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장교는 자신의 의무에 헌신적임을 과시하려고 스스로를 고문도구로 무시무시하게 절단하는(분석적으로 묘사됨) 조처를 받아들인다. 맡은 임무의 모호한 가치와 그 임무에의 기괴한 헌신이라는 이 주제들은 카프카가 항상 열중하여 다루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로, 〈굶주린 예술가〉에서 다시 등장한다.

나중에 〈심판〉에 삽입된 이야기 〈법 앞에서 Vor dem Gesetz〉(1914)는 접근하기 어려운 의미(법)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열망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생애 마지막 시기인 1923~24년에 씌어진 글들은 모두 이해와 평정을 얻기 위한 개인의 허영심, 그러나 굽히지 않는 투지에 집중되어 있다.

단편소설에 나타난 많은 주제들은 장편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의 주인공인 소년 카를 로스만은 가족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지는데, 거기서 아버지와 같은 유형의 많은 인물들과 은신처를 찾고자 애쓰지만 그의 순진성과 단순성으로 인해 어디서나 이용당하며, 마지막 장의 묘사에 따르면 꿈의 세계인 '오클라호마의 자연극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된다. 카프카는 로스만이 궁극적으로 파멸하게 되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심판〉에 나오는 능력 있고 양심적인 은행원이자 독신자인 요제프 K.는 그를 체포하러 온 사람에 의해 잠이 깬다.

치안판사의 법정에서 행해지는 심문은 환멸스러운 어릿광대극으로 바뀌고 그가 체포된 혐의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정은 더이상의 발의권을 갖지 못하지만, 요제프 K.는 스스로 접근할 수 없는 법정을 찾아 그가 알지도 못하는 죄로부터 무죄 석방을 받기 위해 전념한다. 그는 중재자들에게 호소해보지만 그들의 충고와 설명은 오히려 새로운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터무니없는 책략을 써보기도 하지만 더럽고 어둡고 음탕한 결과만을 초래했다.

한 성당에서 쉬고 있을 때, 어떤 신부가 나타나 결백성을 주장한 것 자체가 죄의 표지이며 그가 억지로 찾아나서게 된 정의의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여전히 주위에 도움을 청하면서 최후까지 저항하지만 결국 형이 집행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감된다. 카프카의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악은 도처에 있으며 무죄 석방이나 구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광란의 노력은 다만 인간의 현실적인 무능을 가리킬 뿐임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후기작품 가운데 하나인 〈성〉의 무대는 어떤 성의 지배를 받는 조그마한 촌락이다.

성(Das Schloss)
성(Das Schloss)

이곳의 겨울 풍경 속에서 시간은 흡사 정지해버린 것 같고 거의 모든 장면은 어둠 속에서 벌어진다. K.는 성 당국이 임명한 측량기사라고 주장하며 마을에 도착하지만, 마을 관리들은 그의 주장을 물리친다. 이 소설은 K.가 성으로부터 다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성에 있는 사람, 그럴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요제프 K.(〈심판〉의 주인공)의 법정만큼이나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K.는 희생자가 아니라 공격자로서, 하찮고 거만한 관리들과 그들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도전한다. 그렇지만 그의 책략은 모두 실패한다. 요제프 K.처럼 그 역시 하녀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술집 여급 프리다는 그가 그녀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뿐임을 알게 되자 그를 떠난다. 브로트의 말에 따르면 카프카는 K.가 온갖 노력 끝에 탈진하게 되지만 임종의 자리에서 그 마을에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의 통지를 받게 할 의향이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새로운 요소들이 보인다. 이 작품은 비극적이지만 황량하지는 않고, 대부분 카프카의 인물들이 역할자에 불과하지만 프리다는 확고한 개성을 지니며 냉정하고 사실적인 성격으로 나타난다. 프리다를 통해 K.는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통찰하게 되며, 그가 애정을 갖고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고독감을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카프카의 작품은 단편이건 장편이건 모두 풍부한 해석을 야기시켰다.

브로트와 카프카의 영어 번역자인 뮤어 부부(윌라와 에드윈)는 카프카의 소설들을 성총의 상징으로 보았고, 실존주의자들은 카프카의 죄와 절망의 세계를 진정한 실존을 건설할 토대로 간주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노이로제 증세를 보일 정도로 아버지에게 얽혀 있는 상황을 그의 작품의 핵심으로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비판, 권력자와 그 대리인의 비인간성, 정상적인 일상 밑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폭력과 야만성을 강조했다.

〈심판〉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마구잡이 관료주의에 대한 공포를 통해 카프카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전체주의를 예견했음을 발견해낸 사람들도 있고, 초현실주의자들은 부조리의 끊임없는 침투를 보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런 각각의 해석들의 타당한 증거를 작품이나 일기에서 찾아낼 수는 있으나, 카프카의 작품 전체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선다. 어떤 비평가가 그의 작품들이 '열린 비유'로서 결코 그 최종적 의미를 매듭지을 수 없다고 평한 것은 이 점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에도 한계는 있다.

각 작품마다 절망적으로, 그러나 항상 내면에서 의미와 안정, 자기 가치와 목적 의미를 추구하면서 정신과 육체 양쪽으로 고통받는 인간이 등장한다. 카프카 자신은 글쓰기와 그것이 뜻하는 창작활동을 '구제'의 수단으로, '기도의 형식'으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할 수 있거나 세상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여겼다. 투명하게 묘사되었지만 불가해하게 어두운 그의 작품들은 카프카 자신의 개인적 노력이 허사였음을 폭로한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

죽을 무렵 카프카가 사귄 문학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에게 출판되지 않은 원고는 전부 없애고 이미 인쇄되어 나온 작품은 재판 발행을 중지해달라고 유언했는데, 브로트가 그의 유언대로 했더라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브로트는 유언과는 반대의 길을 밟았고, 그로 인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이 사후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그의 명성은 처음 히틀러 점령시 프랑스와 영어 사용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프카의 세 누이동생이 강제수용소에 유배되어 살해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재발견되어 독일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이후였고, 1960년대에는 공산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인·문학계·정치계까지 영향력이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