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봉기

7월봉기

다른 표기 언어 July Days , 七月蜂起

요약 1917년 7월 16~20일(구력 7. 3~7) 러시아 혁명기에 일어난 봉기.

볼셰비키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쇠퇴하고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이끄는 새로운 임시정부가 구성되자, 임시 정부에 반대해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병사가 무장 시위를 벌였다.

6월경 불만을 품은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병사들은 볼셰비키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으며 반정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 7월 3일 정부의 입헌민주당 소속 각료 해임에 어느 정도 고무된 시위대는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의 국가권력 장악을 요구하면서 페트로그라드를 지나 타우리드 궁까지 행진했다. 볼셰비키는 처음에는 이 시위에 반감을 보이며 저지하려 했지만, 곧이어 지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7월 4일 볼셰비키는 평화적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시위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충돌로 치달아 약 400명이 부상당했다. 임시정부나 소비에트 어느 쪽도 사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소비에트는 권력장악을 거절했으며 볼셰비키도 적극적으로 폭동에 개입하는 것을 꺼렸다. 결국 시위대는 정치적 목표를 잃어버리고 밤이 되자 흩어져버렸다.

볼셰비키의 인기를 깎아내리고 쿠데타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이 독일 정부와 정치적·재정적으로 밀접한 유대를 맺고 있다는 증거를 폭로했다. 대중은 볼셰비키에게 등을 돌렸다. 볼셰비키 당원들은 체포·구금되고 재산은 압류당했으며 지도부는 기소되었다.

레닌은 핀란드로 망명했으나 트로츠키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투옥되었다. 임시정부는 케렌스키를 총리로 하여 재건되었다. 새 정부가 대부분 사회주의자로 구성되기는 했으나, 혁명적 소비에트 정부를 갈망하는 시위대의 요구에 대한 일시적인 양보 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 뒤이은 10월혁명에 의해 붕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