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화

책화

다른 표기 언어 責禍

요약 씨족공동체는 대체로 산과 강을 경계로 하는 일정한 활동영역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경제적 독립체였다. 주된 경제활동인 사냥·고기잡이·농경 등은 모두 이 영역 안에서 행해졌다. 다른 씨족의 영역 안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만약 그 영역을 넘었을 때는 배상해주어야 했다. 동예에는 다른 씨족공동체보다도 이러한 영역에 관한 법칙이 잘 지켜졌다. 동예는 각각의 읍락이 서로 고유한 생활권을 고집하여, 다른 집단의 구성원이 무단으로 침범할 수 없었다. 이러한 동예 특유의 지역사회 폐쇄성이 연맹왕국으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종종 먼 거리에서 생산되는 석재로 만든 석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씨족간에는 교역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
삼한

씨족공동체는 대체로 산과 강을 경계로 하는 일정한 활동영역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경제적 독립체였다.

그들의 주된 경제활동인 사냥·고기잡이·농경 등은 모두 이 영역 안에서 행해졌다. 여기에서 벗어나 다른 씨족의 영역 안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만약 그 영역을 넘었을 때는 배상해주어야 했다.

동예에는 다른 씨족공동체보다도 이러한 영역에 관한 법칙이 잘 지켜졌다. 〈삼국지〉 동이전 예조를 보면, "그 습속은 산천을 중시했는데, 산천에는 각각 부분이 있어 서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읍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즉시 노비·소·말을 벌로 물어야 했는데, 이를 책화라고 불렀다"라고 실려 있다.

이와 같이 동예는 각각의 읍락이 서로 고유한 생활권을 고집하여, 다른 집단의 구성원이 무단으로 침범할 수 없었다. 이러한 동예 특유의 지역사회 폐쇄성이 연맹왕국으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종종 먼 거리에서 생산되는 석재로 만든 석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씨족간에는 교역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예와 같이 산의 능선과 하천 유역을 경계로 한 독특한 영역의식과 이로써 맺어지는 강한 동류의식은 퉁구스족이나 아이누족 사회에서도 보인다. 퉁구스족 일부에서는 하천의 양측을 이루는 산릉을 생활의 경계로 삼는 경우가 있었다. 즉 같은 하천 유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강한 동류의식에 의해 결합되어 하천 이름을 자기 호칭으로 삼기도 하고, 생활의 여러 양식을 공동으로 했다. 아이누족도 하천 유역을 중심으로 한 영역의식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