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주요한

다른 표기 언어 朱耀翰 동의어 松村紘一, 마쓰무라 고이치
요약 테이블
출생 1900. 10. 14, 평양
사망 1979
국적 한국

요약 시인∙언론인∙정치가. 한국근대시 형성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불노리>가 있다.

〈불놀이〉를 지어 한국근대시 형성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다. 본관은 능성. 필명은 벌꽃·주락양(朱落陽). 호는 송아(頌兒).

목사인 아버지 공삼(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은 그의 아우이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선교목사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등부를 졸업했다.

중학시절에 회람잡지 〈사케비〉를 펴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도쿄 제1고등학교[東京第一高等學校]에 다니면서 1919년 2월 김동인·전영택 등과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펴냈고, 그해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1925년 후장대학[滬江大學]을 졸업했다. 1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1926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으며, 1929년 광주학생사건 때 잠시 투옥된 적도 있었다.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전무를 역임하고, 1935년부터 실업계에 입문하여 화신상회 이사로 근무했다. 8·15해방이 되자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민주당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1960년 재선되었으며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1965~73년 대한일보사 회장, 1968년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안장되어 있다.

문학세계

주요한이 우리말로 쓴 최초의 작품은 1917년 〈청춘〉 11월호에 발표한 단편 〈마을집〉이다. 이 소설은 한 유학생이 조선현실을 개혁하겠다는 뜻을 품고 일본에서 귀향했다가 현실의 완강한 힘에 좌절당하고 다시 일본으로 도망치듯 돌아간다는 이야기로서, 그가 지니고 있던 근대관과 개혁사상의 허와 실을 잘 보여준다. 이어 〈시내〉·〈봄〉·〈눈〉·〈이야기〉·〈기억〉 등 5편의 시를 '에튜으트'라는 제목으로 〈학우〉에 발표했으며, 1921년 〈창조〉 창간호에 시 〈불놀이〉를 발표하면서 시창작에 전념했다.

〈불놀이〉는 최근까지도 한국 최초의 근대자유시라고 알려져왔으나 그보다 앞서 김억과 황석우의 자유시 형식실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역사적 의의는 다소 달라졌다. 그러나 근대자유시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작품임에는 변함이 없다. 사월초파일에 여는 전통적인 관등놀이를 소재로 종래 한국 시가의 율격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산문조의 유장한 호흡을 시도했는데, 이는 서구 신낭만주의와 상징주의적 표현기교에 영향받은 듯하다. 그의 문학세계를 형성했던 큰 축은 당시 일본에 활발히 소개되고 있던 프랑스의 신낭만주의나 이미지즘 시이다.

따라서 시에 대해 비교적 유미주의적 입장을 지녔으며 현실반영에 힘을 쏟는 '민중시'나 사회주의 계열의 시를 배척하는 태도를 지녔다. 그런가 하면 그의 사상형성에 바탕이 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우리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요의 율격을 현대시를 통해 되살리려는 새로운 시도를 펴기도 했다. 그의 시들은 대체로 밝고 건강한 서정을 드러내며 섬세한 우리말을 시어로 즐겨 사용했다. 시집으로 〈아름다운 새벽〉(1924)·〈3인시가집〉(이광수·김동환 공저, 1929)·〈봉사꽃〉(1930) 등이 있고, 그밖에 소설집으로 〈사막의 꽃〉(1935), 산문집으로 〈철학하는 삶을 위하여〉(1986)·〈안도산전서〉(1963) 등을 펴냈다. 197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