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핀

조제핀

다른 표기 언어 Josephine 동의어 조제핀 드 보아르네, Joséphine de Beauharnais
요약 테이블
출생 1763. 6. 23, 마르티니크 트루아질레
사망 1814. 5. 29, 프랑스 말메종
국적 프랑스

요약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배우자이다. 혁명군에 복무하던 남편이 처형된 후 미망인이었던 조제핀은 당시 출세가도를 달리던 청년 장교 보나파르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임명된 이후 그녀는 그와의 결혼에 동의했다. 1804년 5월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가 된 이후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태도와 무엇보다도 나폴레옹의 아들을 낳지 못한 것 때문에 부부관계에 갈등이 생겨났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와 정략결혼을 할 생각으로 1810년 1월, 교구사제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1804년의 결혼식을 무효화했다.

조제핀(Josephine)
조제핀(Josephine)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배우자이다.

해군에서 근무했던 가난한 귀족 조제프 타셰르 드 라 파주리의 맏딸로 태어나 15년 동안을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 섬에서 살았다. 1779년에 부유한 청년장교인 보아르네 자작 알렉상드르와 결혼해 파리로 갔다. 오르탕스와 외젠의 2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허영심 많은 알렉상드르는 그녀의 태도가 촌스럽고 세련미 없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 베르사유에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에 그녀를 데려가기를 거절했다.

그가 갈수록 냉담해지자 1785년 3월 그녀는 별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녀는 파리에 3년간 더 머물면서 사교계의 관습을 익히고 1788년 마르티니크로 돌아갔다. 1790년 그 섬에서 노예봉기가 일어나자 당시 혁명이 한창이던 파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고급사교계에 출입했으나 혁명군에 복무하던 남편이 좌익 자코뱅당의 미움을 사 1794년 6월 단두대에서 처형되자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그녀 자신도 투옥되었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9일(7. 27)의 쿠데타로 공포정치가 종식되면서 풀려났고 총재정부의 출범 무렵 파리 사교계의 선도자로 부상했다.

완전히 촌티를 벗은 조제핀은 당시 출세가도를 달리던 청년 장교 보나파르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임명된 이후 그녀는 그와의 결혼에 동의했다. 1796년 3월 9일 민간의식으로 결혼식을 치렀으나 조제핀은 남편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해 보나파르트가 쓴 열정적인 연애편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고, 1798~99년 그가 이집트 원정중일 때는 매우 지조 없이 다른 군장교와 농탕을 치며 다녔다. 보나파르트는 이혼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자식들의 만류로 결국 그녀를 용서하고 심지어는 그녀가 진 엄청난 빚까지 갚아주기로 했다.

통령정부 시기(1799~1804)에 그녀는 더이상 추문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사교계에서의 위치를 이용해 남편의 정치적 진출을 도왔다. 1804년 5월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가 된 이후 그녀는 종교의식으로 다시 결혼식을 갖자고 남편을 설득해 1804년 12월 1일 전혀 내키지 않아 하는 황제와 예식을 치르고 그 다음날 노트르담에서 교황이 주재하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에 황후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제 조제핀의 지위는 확고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자식인 오르탕스(나폴레옹의 동생 루이와 결혼함)와 외젠(바이에른의 왕녀와 결혼함)의 결혼으로 그녀의 입지는 확실해진 것 같았으나 그녀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태도와 무엇보다도 나폴레옹의 아들을 낳지 못한 것 때문에 부부관계에 갈등이 생겨났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와 정략결혼을 할 생각으로 1810년 1월, 교구사제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1804년의 결혼식을 무효화했다. 어쩌면 의도적인 것으로도 보이는 그같은 사소한 기술적 착오를 구실로 그는 조제핀과 이혼하지 않아도 그녀를 폐위시킬 수 있었다.

만약 이혼을 했더라면 그는 교회와 오스트리아 황제 모두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었다. 조제핀은 파리 교외의 말메종에 있는 사저로 물러나 계속 흥청망청 향연을 즐겼으며 황제는 그 비용을 지불했다. 나폴레옹이 폐위된 이후 그녀는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보호를 받았으나 이후 곧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