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 소비에트

장시 소비에트

다른 표기 언어 Kiangsi Soviet

요약 마오쩌둥[毛澤東]과 주더[朱德]가 중국 남동부 장시 성[江西省]에 세웠던 독립정부(1931~34).
(병). Jiangxi. (웨). Chianghsi. (관). Kiangsi Soviet.

중화소비에트 공화국이라고도 한다. 1940년대말에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중국 전역을 장악한 데에는 장시 소비에트에서 얻은 유격전술 및 농민조직화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원래 도시근로자를 기반으로 한 지식인 단체로 국민당과 제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7년 장제스[蔣介石]는 공산주의자들을 국민당에서 축출했다. 이를 계기로 마오쩌둥과 주더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장시 성과 후난 성[湖南省]의 경계에 있는 징강 산[井岡山]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들은 모스크바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르는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과는 별개로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를 세우기로 했다.

1930년 6월 소규모 병력으로 대도시를 점령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의 운동은 일시적으로 퇴조기를 맞게 되었다. 그들은 멀리 농촌지역으로 후퇴해야 했지만, 농민들에게 크게 환영받은 토지재분배 정책을 실시하여 농민을 조직하는 일에 힘씀으로써 다시 근거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한 이 장시 소비에트는 급속히 확장되어 짧은 기간 안에 수백만 명이 사는 지역을 점거하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놀란 국민당의 장제스는 1930~33년 4차에 걸쳐 대규모 포위섬멸작전을 폈으나, 공산군의 게릴라 전술에 휘말려 번번이 패배하고 말았다.

1933년 소련파가 장악하고 있던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기반이 미약한 상하이[上海]에서 장시 소비에트로 본부를 옮겼다. 코민테른의 지지를 등에 업은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점차 소비에트의 권력을 마오쩌둥에게서 빼앗아 마오쩌둥이 택했던 온건한 정책을 버리고 과격한 토지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대지주뿐만 아니라 부농이나 소지주의 소유물까지도 전부 몰수되어 재분배되었다. 1933년 장제스가 제5차 토벌작전을 펴자 새로운 지도부는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을 버리고 진지전으로 이에 대항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1934년 10월 13일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된 홍군은 장시 근거지를 버리고 저 유명한 장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