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방임주의

자유방임주의

다른 표기 언어 laissez-faire , 自由放任主義

요약 애덤 스미스 및 존 스튜어트 밀이 대중화시킨 자유방임주의는 사유 재산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고, 국가의 역할은 질서와 안보 유지로 제한하며 개인은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유방임주의는 경제이론인 동시에 정치 이념이었다. 19세기의 지배적 이념은 개인이 원하는 목적을 각기 추구하는 것이 결국 그가 속한 사회를 위한 최선의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질서와 안보 유지, 개인이 소망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간섭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 이론의 인기는 18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으나 19세기말 산업의 성장과 대량생산 기술의 도입으로 야기된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새 이론에 밀려났다.

이 용어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1756~78년경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중농주의자로 알려진 경제학자들과 연관이 있다. 자유방임정책은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의 영향 아래 발전하면서 고전 경제학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믿음은 19세기의 대중적 견해였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애덤 스미스(Adam Smith)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규제받지 않는 인간활동에 대한 신뢰를 뒷받침하는 데 자연경제질서라는 고전경제학의 가설을 인용했다. 이러한 철학을 대중적인 경제용어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48)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서 그는 경제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찬반논쟁을 거론했다.

정치경제학의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정치경제학의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자유방임주의는 경제이론인 동시에 정치 이념이었다. 19세기의 지배적 이념은 개인이 원하는 목적을 각기 추구하는 것이 결국 그가 속한 사회를 위한 최선의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질서와 안보 유지, 개인이 소망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간섭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 이론의 인기는 18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19세기말 산업의 성장과 대량생산 기술의 도입으로 야기된 급격한 변화로 인해 이 이론이 지도적인 이념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그후 이 개념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새 이론에 밀려났지만 자유방임의 일반적인 철학은 여전히 일부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