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론

자강론

다른 표기 언어 自强論

요약 1906~10년에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하나.

한국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문화적·경제적 실력을 양성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함으로써 장차 국권회복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운동으로 크게 4계열로 나누어진다.

첫째, 일본의 보호정치를 선진문명국의 지도로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지도하에 실력을 양성하고 정당정치를 주장하는 대한협회 계열로, 윤효정 등의 헌정연구회계와 권동진(權東鎭)·오세창의 천도교계, 정운복·최석하(崔錫夏)의 서북학회계열로 나누어볼 수 있으며 대체로 권력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둘째, 일제의 한국보호국화를 순수한 동양삼국연대론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아 이를 비판하고, 문명개화·실력양성·애국심고취 등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을 주장하면서 특히 점진적인 문명개화와 유교의 근대적인 종교로의 개혁을 강조한 장지연(張志淵)·박은식·유근 등의 황성신문 계열이다.

셋째, 아세아연대론·동양주의 등을 일제의 침략 이데올로기로 보고 이를 철저히 비판하면서 실력양성을 통한 국권회복운동을 주장하던 양기탁·신채호 등 신민회 좌파를 중심으로 한 대한매일신보 계열이다. 이들은 자강운동 내의 근대화지상주의적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실력양성은 무엇보다도 애국정신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1909년경에는 선실력양성·후독립론을 비판하고 선독립론을 주장했다(→ 실력양성론).

넷째,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한국은 아직 독립할 실력이 없다면서 먼저 독립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것을 주장하고, 특히 근대시민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의 거듭남을 위한 인격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안창호(安昌浩)·최광옥(崔光玉) 등의 청년학우회 계열이다.

이들의 공통된 자강운동론인 선실력양성·후독립론은 약육강식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자강론에서 제시한 실력양성의 구체적인 방법은 교육과 실업의 진흥으로 교육의 진흥이 실력양성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의무교육의 실시, 실업교육의 강조, 상무교육의 실시, 국가사상의 고취 등을 주장했다. 또 실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농업에서는 종자개량·기계사용·농산제조·황무지개간·농업개량을, 상업에서는 신용의 획득과 수출품의 관세 감면제도, 공업에서는 공업기술의 연구, 기술교육의 보급, 산수·물리·화학 등 기초과학의 연구 등이 강조되었다. 또 상공업자본의 영세성을 해결하기 위해 합자회사의 설립을 주장했다.

이 실업진흥론은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조류를 맞이해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에 투자해 새로운 자본축적을 시도하던 전직관료·지주·상인층의 요구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자강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나 대한협회의 회원 중에는 회사나 공장의 설립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또 자강론자들은 자강운동의 주요과제의 하나로 잘못된 습성과 폐습의 타파를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민족의 습성으로 고루하고 수구적이며 모험심과 진취성이 결여되어 있고, 당파성·나태성·의뢰성이 강하고 애국사상이 결핍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회진화론과 함께 일본인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거론되던 한민족열등설이 한국인들에 의해 내재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말의 자강운동은 1910, 1920년대에 실력양성운동으로 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