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이태준

다른 표기 언어 李泰俊 동의어 상허당주인, 尙虛堂主人
요약 테이블
출생 1904. 11. 4, 강원 철원
사망 미상
국적 한국

요약 소설가.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기법적 완숙과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작으로 <달밤>, <복덕방>, <돌다리> 등이 있다.

이태준
이태준

호는 상허(常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서 공부했다. 귀국한 뒤로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기자로도 활동했다.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1930년말에는 〈문장〉의 소설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최태응·곽하신·임옥인 등을 배출했다.

8·15해방 후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임화·김남천 등과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월북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7년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기행에 나섰고, 6·25전쟁 때는 북한의 종군작가로 참가했다. 1953년 남조선노동당 인물들과 함께 숙청될 뻔했으나 가까스로 제외되었고, 1955년 소련파가 숙청될 때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 함경남도 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일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1953년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0년대 초에 병사했다는 증언도 있다.

1925년에 시골여인의 무절제한 성생활을 그린 〈오몽녀 五夢女〉(시대일보, 1925. 8. 13)로 등단한 뒤, 〈불우선생 不遇先生〉(삼천리, 1932. 4)·〈달밤〉(중앙, 1933. 11)·〈손거부 孫巨富〉(신동아, 1935. 11)·〈가마귀〉(조광, 1936. 1)·〈복덕방〉(조광, 1937. 3) 등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현실과는 무관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지만 대부분 토착적인 생활의 단면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는 특히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정련(精練)을 강조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몇 번을 되풀이해 고쳤는데,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기법적 완숙과 예술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복덕방
복덕방

1948년 북한의 토지개혁 문제를 다룬 〈농토〉를 펴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에 대한 적대감을 그린 〈첫 전투〉와 〈고향길〉을 펴냈다. 이 시기에는 초기와는 달리 정치·사회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선전·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이념적 변화를 형상화한 〈해방전후〉나 북한의 토지개혁 과정을 그려낸 〈농토〉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소설집으로 〈달밤〉(1934)·〈구원의 여상〉(1937)·〈화관〉(1938)·〈이태준 단편집〉(1941)·〈돌다리〉(1943) 등과, 수필집으로 〈무서록 無序錄〉 등이 있다. 그밖에 한 시대의 뛰어난 저서로 평가받은 〈문장론〉·〈문장강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