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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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0. 1. 30, 경남 의령
사망 1987. 11. 19,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삼성그룹의 창업자. 치밀한 재정관리와 인사관리로 오늘날 삼성그룹의 놀라운 조직력을 다졌다. 193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에서 수학하고, 1938년 대구를 중심으로 청과물·소맥분 등을 수송하는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이후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한 후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 등을 설립하며 기업집단을 형성했다. 1960년대 이후 줄곧 삼성그룹을 이끌었으며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삼성물산 회장, 학교법인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중앙매스컴 회장,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셋째 아들 건희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이병철(李秉喆)
이병철(李秉喆)

삼성그룹의 창업자이다. 호는 호암. 1926년 서울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뒤 중퇴했다. 193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가 1934년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82년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8년 대구를 중심으로 청과물·소맥분 등을 수송하는 삼성상회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그후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고, 1951년 삼성물산(주) 사장, 1953년 제일제당(주) 사장, 1954년 제일모직(주) 사장 등을 지냈다. 1961년 5·16군사정변 발발 당시 도쿄[東京]에 출장중이었던 그는 부정축재자 제1호로 지명되었으나 곧 귀국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박정희 의장과 담판을 지어 재벌의 재산몰수보다는 재벌을 통한 국가경제 건설이 더 중요함을 역설했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를 수립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 1962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1961~87년 삼성물산(주) 회장, 1964년 대구대학(뒤에 청구대학과 통합 영남대학교가 됨) 이사장, 학교법인 성균관대학교 이사장, 196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1968년 중앙 매스컴(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 1971년 삼성공제회 이사장, 1977~87년 재단법인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1980~87년 (주)중앙일보사 회장, 1982~87년 한일경제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치밀한 재정관리와 인사관리로 오늘날 삼성그룹의 놀라운 조직력을 다진 기업인이며, 미래지향적인 사업확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1960년대말 20세기 후반의 첨단산업으로 부각되었던 전자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이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던 럭키금성그룹과 불화를 일으킬 만큼 기업의 발전을 위해 비정한 측면도 있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비료공장 밀수사건과 관련하여 한때 삼성그룹 내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은퇴한 적이 있었으나 곧 복귀했다. 이때 그룹을 이끌어가던 맏아들 맹희와 경영이념상의 차이를 보였는데 끝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셋째 아들 건희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한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과 세계적으로 우수한 경영자에게 수여되는 세계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우리가 잘 사는 길〉과 자서전 〈호암자전 湖巖自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