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맨시피스트

이맨시피스트

다른 표기 언어 Emancipist

요약 18세기말과 19세기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한 과거의 죄수들과 그 지지자들.

전문적인 의미에서 이 명칭은 단지 사면받은 죄수들에게만 적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형기만료자들'까지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1810년 이전에 이맨시피스트들은 토지를 하사받았으며(성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음) 일부는 기업과 전문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민 정착자(→ 익스클루시브)들과 영국 관리들이 지배하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의 정치·사회 생활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래클런 매콰리가 총독으로 있는 동안(1809~21)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매콰리는 이맨시피스트 가운데 유력자들을 식민지의 사교계에 끌어들이고 그들 중 법률가들은 대법원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치하려고 했으며 또한 4명의 이맨시피스트를 행정관직에 임명했다. 그러나 매콰리의 노력은 이맨시피스트들의 바람에 반발하는 세력을 긴장시켰으며 영국 정부의 입장도 자유민 정착자들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흘러 이맨시피스트들의 완전한 시민권을 부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1820, 1830년대에 이맨시피스트들은 좀더 덜 보수적인 자유민 정착자들과 연합하여, 식민지에서 대의정치의 실시를 원한 유력한 자유주의자들의 정파를 지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애국협회). 이들의 목표는 1842년에 실현되었고 이맨시피스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제한도 철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