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제니오 4세

에우제니오 4세

다른 표기 언어 Eugenius IV
요약 테이블
출생 1383경, 베네치아
사망 1447. 2. 23, 로마
국적 바티칸시티

요약 교황(1431~47 재위).
본명은 Gabriele Condulmer.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사였던 그는 추기경으로 있던 중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어 마르티노 5세의 뒤를 이었다. 교황이 된 후 바젤 공의회(1431~37)를 소집해 교회 개혁을 위해 투쟁했다. 공의회 분위기가 교황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에우제니오는 그 공의회를 해산시키려고 했고, 공의회 위원들은 교황에 대한 공의회의 수위권을 주장했다(1433). 에우제니오와 공의회 간의 갈등은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이 보이자 약화되었다.

동방정교회는 교황과 협상하는 것을 선호하여 이탈리아에서 회의를 개최하려 했다. 에우제니오는 1438년 페라라로 공의회를 옮길 것을 명령했고, 많은 주교들이 이에 복종했다. 그러나 이와 의견을 달리하는 반대자들은 바젤에서 공의회를 계속하기 위해 교황의 명령에 불복하고 남아 있었다. 교황의 명령에 따른 공의회 주교들은 바젤에 남아 있던 주교들을 파문했으나 바젤의 주교들은 에우제니오 4세를 폐위했다.

한편 1438년 7월 7일 프랑스 왕 샤를 7세는 에우제니오의 뜻에 대항하여 프랑스 교회의 자유를 확립하고 교황권의 축소를 골자로 하는 부르주 국왕 칙령을 반포했다. 이것은 바젤 공의회의 교령에 자극받아 이루어진 결과이다. 전염병 때문에 공의회는 페라라에서 피렌체로 옮겨 1439년 7월 6일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의 일치가 이루어졌으나, 그 일치는 단기간으로 끝나버렸다.

페라라-피렌체 공의회에서 성공을 거둔 에우제니오는 바젤에 모인 주교들을 굴복시켜 교회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을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