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

요크

다른 표기 언어 Richard, 3rd duke of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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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11. 9. 21
사망 1460. 12. 30, 잉글랜드 요크셔 웨이크필드 근처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잉글랜드 왕위를 요구하며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에 장미전쟁(1455~85)을 불러일으킨 인물.

이 분쟁의 초기 5년 동안 잠시 정부를 장악했다. 그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아버지였다. 1415년 삼촌인 에드워드를 계승해 요크 공작이 되었다. 에드워드 3세(1327~77 재위)의 셋째 아들인 클래런스 공작 라이오넬의 후손인 그는 장자 상속의 원칙에 따라 에드워드의 넷째 아들의 후손인 헨리 6세(1422 즉위)보다 왕위 계승 서열이 앞섰다. 그러나 1436~37년과 1440~45년에는 프랑스와 노르망디 총독으로서 국왕 헨리 6세에게 충성을 바쳤다. 동시에 그는 헨리의 정부를 통제하고 있던 위세 높은 보퍼트 가문과 사이가 나빴다.

1447년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가 죽음으로써 요크가 왕위계승서열 1순위가 되었으나, 보퍼트 가문 사람들은 그를 아일랜드 총독으로 보내 사실상 추방했다. 그는 1450년 영국으로 돌아와 헨리의 정부에서 새로 총리가 된 서머싯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의 반대파를 이끌었다. 1453년 7월 왕이 신경쇠약에 걸리자 서머싯의 지원을 받은 야심만만한 왕비 앙주의 마거릿이 섭정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녀의 통치는 지지를 받지 못해 1454년 3월 의회는 요크를 왕국의 섭정으로 임명했다. 마거릿은 아직 어렸던 자기 아들의 왕위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요크를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1454년 12월 헨리가 건강을 회복하자 그녀는 그를 설득해 요크를 해임하고 서머싯을 권좌에 복귀시켰다. 요크는 즉시 군사를 일으켰다. 1455년 5월 22일 하트퍼드셔 세인트올번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서머싯은 전사했고, 요크는 마거릿이 1456년 10월 다시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 정부를 장악했다. 양측의 적대 행위는 1459년말에 재개되었고, 1460년 7월 요크의 유능한 부관인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노샘프턴에서 랭커스터 가문을 무찌르고 왕을 포로로 잡았다.

그후 헨리는 죽을 때까지 왕위를 지키고 요크는 그의 뒤를 잇는다는 내용의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기 아들의 왕위계승권 박탈을 인정하지 않은 마거릿은 북부 잉글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녀를 처치하려던 요크는 웨이크필드 부근에 있는 자신의 성 밖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이듬해 그의 아들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