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헴

오케헴

다른 표기 언어 Jean d'Ockeghem
요약 테이블
출생 1430경, 플랑드르
사망 1495경, 프랑스 투르
국적 플랑드르

요약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 음악을 주도했던 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
Ockeghem은 Okeghem이라고도 씀.

교회음악 및 세속음악을 작곡했다.

최초로 기록된 그의 직책은 안트웨르펜 성당의 가수(1443~44)였고 1446~48년 부르봉 공작 샤를의 소예배당에서 일했으며 나중에는 왕실 소예배당에서 봉사했다. 그는 프랑스의 샤를 7세, 루이 11세, 샤를 8세의 통치 아래 계속 궁정 신부와 작곡가로 봉직했으며 1465년에는 왕실 소예배당 악장의 칭호를 얻었다. 투르의 부유한 생마르탱 수도원의 출납관으로서 상당한 급료를 받고 있던 그는 동시대 플랑드르 악파의 많은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견문을 넓히기 위해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여행했다.

음악교사로서 다음 세대 작곡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그가 죽자 에라스무스는 그를 애도하는 글을 썼으며 요하네스 루피는 이 글에 곡을 붙였다. 조스캥 데 프레는 몰리네의 〈탄식 Depoloration〉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 가운데는 14편의 미사곡, 20곡의 샹송이 있다. 그의 음악은 선배 작곡가인 기욤 뒤페와 존 던스터블에 비해 그 음색이 풍부한데 오케헴의 시대에는 성악 선율을 기악으로 뒷받침하던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이 점차 낭랑한 코랄적 화성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베이스 음역이 이전 작곡가들의 음악에 비해 더욱 낮아졌으며 테너와 카운터테너 성부는 가로 교차하면서 보다 무게 있고 짜임새 있는 음을 들려주었다.

서로 다른 성부의 선율선들이 각각 다른 곳에서 종지함으로써 음악의 흐름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작품 전반에 걸쳐 선율적 모방이 있기는 하지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의 〈Missa prolationum〉과 〈Missa cuiusvis toni〉는 고도로 발달된 대위법적·카논적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그가 완벽하게 구사했던 엄격한 카논 기법은 교묘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감상자가 그것을 명확하게 구별해낼 수 없다. 그는 음악적 통일을 얻기 위해 종종 기존의 음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오케헴의 모테트 10곡 가운데는 〈아베 마리아 Ave Maria〉·〈살베 레지나 Salve regina〉·〈알마 레뎀프토리스 마테르 Alma redemptoris mater〉, 그리고 응답송 〈가우데 마리아 Gaude Maria〉 등과 같이 마리아에 관한 가사를 사용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5세기초의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세속음악에 비해 보다 장엄한 양식으로 미사곡을 작곡했다. 주로 3성부로 작곡된 샹송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미사곡들은 대개 4성부(그중 2곡은 5성부)로 작곡되었으며, 선율선은 샹송의 그것보다 길다.

샹송에서는 미사곡보다 선율적 모방이 더 잦으며 리듬이 더 직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