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군

영국 육군

다른 표기 언어 British Army , 英國陸軍

요약 영국에서 국토 방위와 국제 상호 방위 의무를 수행하는 군대.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기 이전에 영국 육군은 왕실 근위대(왕족 친위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모두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자유민이었던 이들은 1년에 2개월씩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의용군이었다.

1066년 이후 노르만족은 봉건 체제를 도입하고, 기마대와 그 보조 부대 및 보병과 기능공 부대로 이루어진 군대 체제를 도입했다. 백년전쟁(1337~1453)과 장미전쟁(1455~85) 때는 고용된 용병이 민병대와 함께 싸웠다. 1346년의 크레시 전투를 계기로 활을 쏘는 부대가 중요해졌고, 긴 활이 전투에 혁신을 일으켰다.

영국 최초의 상비군은 영국내란이 한창이던 1645년에 올리버 크롬웰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신형군(New Model Army)이라고 부르는 이 상비군은 규율이 잘 잡혀 있고 고도로 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부대는 크롬웰이 세운 자유공화국의 지나친 독재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크롬웰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찰스 2세는 1660년에 근위여단(지금의 근위 보병 제2연대)만 남기고 신형군을 해체했다.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난 뒤 제정된 권리장전(1689)에 따라 군통수권은 의회로 넘겨졌고, 이 제도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이 식민지 제국을 통합 정리하던 18, 19세기에 영국 육군은 규모가 계속 늘어나 효과적인 전투력으로 발전했다. 육군은 식민지에 상비군을 주둔시키고, 나폴레옹 전쟁(1800~15) 때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800년대말에는 육군의 조직과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1905~12년 국방 의용군 및 특별 예비군이 창설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징병제도를 실시하여 육군의 규모가 크게 늘어났지만, 1919년에 징병이 끝나자 최소한의 규모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1939년 7월에 징병 제도가 부활되었다.

영국 육군의 중요한 변화는 1945년 이후에 일어났다. 영국 식민지들이 독립하자 해외 주둔군이 본국으로 돌아왔고, 병력은 유럽에 배치되거나 국토 방위군에 흡수되었다. 1960년에 징집령이 폐지되자 지원병으로만 구성된 군대가 다시 생겨났고, 핵무기가 도입되면서 국방 의용군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 1964년에 국방부가 창설되어 모든 군대 행정을 관리하게 되었고, 1972년에는 영국 지상군 사령부가 모든 육군 병력을 통제하게 되었다. 국방장관은 총리와 내각에 책임을 진다. 국방장관은 국방 참모총장의 조언을 받고, 국방 참모총장은 3군 각 참모총장의 도움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