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다른 표기 언어 Estonia , (에)Eesti 동의어 에스토니아 공화국, Republic ofEstonia
요약 테이블
위치 발트해 동부
인구 1,319,041명 (2024년 추계)
수도 탈린
면적 45,228.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에스토니아 공화국 (Republic ofEstonia)
기후 대륙성기후
민족 구성 에스토니아인(68%), 러시아인(26%), 우크라이나인
언어 에스토니아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복음루터교(14%), 러시아정교(13%)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수레국화
대륙 유럽
국가번호 372
GDP USD 30,821,000,000
인구밀도 30명/㎢
전압 220~230V / 50Hz
도메인 .ee

요약 유럽 북동부에 있는 나라. 수도는 탈린이며 화폐는 유로이다. 대륙성기후이며 유모 셰일, 인산염암, 석회암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경제는 공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농업 또한 중요시한다. 11년간의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하며 수도 탈린에는 여러 개의 극장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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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 교류·교민 현황
  2. 자연환경
  3. 국민과 경제
  4. 정치·사회·문화
  5. 역사와 한국과의 관계
    1. 에스토니아의 역사
    2. 한국과의 관계
    3. 외교
    4. 경제·통상·주요 협정
    5. 문화 교류·교민 현황
에스토니아 국기
에스토니아 국기

수도는 탈린이며 본토와 발트 해의 800여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8년까지 독립국이었던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1991년 독립을 되찾았다. 북쪽으로 핀란드 만, 동쪽으로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라트비아, 서쪽으로 발트 해와 접해 있다.

지도
에스토니아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91년 에스토니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73년 설립된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에스토니아의 영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2020년 주한 공관을 개설했다. 2018년 박원순 시장, 2019년 문희상 국회의장 등이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에스토니아 수출액은 4,898만 달러, 수입액은 4,745만 달러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 항공협정(2023년 10월) 등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에스토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281명이며,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45명이다.

자연환경

에스토니아에는 플라이스토세(1만∼160만 년 전) 빙하작용의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남부는 빙퇴석 구릉지대로 이루어졌으며 중부에는 빙식작용으로 꼭대기가 평평해진 구릉지대가 많다. 이런 구릉지대는 주로 빙하가 움직였던 방향을 따라 발달해 있다.

호수·삼림·강이 매우 많다. 강은 대부분 북쪽의 핀란드 만을 향해 흐르고 일부는 동쪽의 페이푸스 호(러시아 연방에도 걸쳐 있음)와 서쪽의 리가 만으로 유입된다. 에스토니아의 기후는 온화한 대륙성으로 전반적으로 농업에 적합하다. 1년 중 월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달은 2월로, 탈린의 경우 2월평균기온이 -6℃이다. 한편 평균기온이 17℃인 7월이 가장 더운 달이다. 탈린의 연강우량은 570㎜이며 연중 고른 분포를 나타낸다.

에스토니아에는 말코손바닥사슴·노루·붉은사슴·멧돼지 등을 비롯한 약 60종의 포유동물이 서식하며 특히 북동부 삼림지역에서는 곰과 스라소니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은 유모 셰일로 많은 산업노동자들이 유모 셰일의 생산과 가공에 종사하고 있다. 이탄 또한 매장 및 생산량이 많은 중요한 자원이다. 그밖에도 질좋은 인산염암·석회암·대리암·점토·이회암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에스토니아의 자연
에스토니아의 자연

국민과 경제

핀우고르계의 발트핀족에 속하는 에스토니아인이 전체 인구의 3/5을 차지하며 러시아인은 1/3 정도이다. 그밖에 우크라이나인·핀족·벨라루스인 등의 소수민족이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제는 공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농업 또한 중요시한다. 유모 셰일의 가공업은 합성 가스를 생산하며 자국 공업과 발트 해 연안 국가들의 화력발전에 연료를 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가공된 유모 셰일을 바탕으로 벤젠·접착제·탄닌산·수지·포름알데히드·합성세제를 생산한다.

건축자재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목공업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산업이었으나 지나친 삼림의 벌채로 산업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삼림 회복을 위한 숲가꾸기 정책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목공업용 목재의 일부를 수입하는 실정이다. 목재 생산품으로는 종이·펄프·합판·성냥·가구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는 직물로 유명한데 특히 면직물이 뛰어나며 모직·견섬유·리넨·편직물·신발 등을 생산한다.

농업 분야에서는 돼지·소 사육과 사료용 곡물 재배가 가장 활발하다. 들판에서 거대한 빙퇴석들을 제거해야만 하고 대부분의 자연 목초지는 배수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농사짓기가 매우 어렵다. 가축사료용 곡물이 전체 곡물 생산량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농업 집단화가 이루어졌다가 1990년대에 다시 개인 경영으로 돌아가고 있다.

2024년 추계인구는 131만 9,041명이며, 전체 인구의 16%가 15세 이하의 유소년층이다. 전체 인구의 65.4%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카드리오르그 왕궁 박물관
에스토니아 카드리오르그 왕궁 박물관

정치·사회·문화

에스토니아는 1990년대초에 정치체제의 변화를 겪었다. 국회인 최고 회의는 다당제하에서 자유 경선을 거쳐 선출되는 위원들로 구성되며, 대통령과 총리를 뽑는다. 11년간의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환자와 불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탈린에는 오페라 하우스, 발레극장, 인형극장과 정극을 상연하는 여러 개의 극장이 있다. 파르누·빌랸디·락베레에도 전문극장이 있다. 탈린은 수많은 가수들이 출연하는 가요제로 유명하다.

역사와 한국과의 관계

에스토니아의 역사

에스토니아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Germania〉(1세기)에 나온다. 9세기에 바이킹이 침략해온 이후 덴마크·스웨덴·러시아의 침략을 받았으나 13세기까지는 대체로 외세의 공격을 견뎌냈다. 1346년 덴마크 왕실이 발트 해의 섬들과 에스토니아 북부에 대한 주권을 이미 리보니아(에스토니아 남부와 라트비아)를 차지하고 있던 튜튼 기사단에게 팔아버림으로써 이 지역은 완전히 게르만족의 소유가 되었다.

16세기 중엽 튜튼 기사단이 해체되면서 에스토니아는 또다시 양분되어 북부는 스웨덴에 항복하고 리보니아는 폴란드에 의해 장악되었다(→ 검의 형제기사단). 알트마르크 휴전협정(1629)에 따라 폴란드는 리보니아의 대부분을 스웨덴에 양도했다. 18세기초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의 카를 12세에게 승리를 거둔 뒤 리보니아를 장악하여 에스토니아·리보니아·쿠를란디아로 분리했다.

19세기에는 사유재산제에 대한 개혁이 단행되고 농노제가 폐지되었다. 알렉산드르 3세가 왕위에 오르자(1881) 에스토니아는 엄격한 러시아화의 과정을 겪기 시작했다. 매우 혼란했던 20세기초에는 몇 차례나 독립을 쟁취했으나 다시 잃곤했다. 1940년 소련에 합병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시 독일에 점령되었으나 1944년 다시 소련에 넘어가면서 소련을 이루는 연방공화국이 되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 이후 독립움직임을 본격화하여 1990년 3월 30일 독립을 선언했으며 1991년 8월 독립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1992년 6월 새 헌법이 채택된 후 그해 9월에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으며, 민족주의 연합정당인 이사마연합(Isamaa는 '조국'이라는 뜻)의 렌나르트 메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스토니아는 독립 후 러시아 이민자들 때문에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놓였었다. 1940년 이후 에스토니아로 이민 온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에게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주기 위해서는 언어 습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선결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독립 후에도 주둔해 문제가 되었던 러시아 군대는 1994년 8월 에스토니아를 떠났다.

에스토니아 톰페아 언덕
에스토니아 톰페아 언덕
한국과의 관계
외교

에스토니아와 한국은 1991년 10월 17일 국교를 수립했다. 주 핀란드 대사관에서 에스토니아의 외교 업무도 겸임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수교를 맺지 않았다. 1993년 9월에 마트 라(Mart Laar) 총리가 방한했으며, 1995년 4월 정종욱 대통령 특사가 에스토니아를 방문했고 1997년 7월에는 리만(Leimann) 경제장관이 방한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과의 무역은 지금까지 증가해왔지만 활발한 편은 아니다. 대에스토니아 주요 수출품은 수송장비, 기계류와 정밀기기, 섬유원료, 가죽·고무 및 신발류, 철강 및 금속제품이며 주요 수입품은 경공업 원료, 전기전자기기, 광물, 직접 소비재 등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에스토니아 수출액은 6,213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6,734만 달러이다. 양국 간에는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90일간 무사증 입국이 가능하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00년 이후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대사관과 국제교류재단을 통하여 탈린사범대학교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으며, 2003년에는 탈린사범대학교에서 한국어-에스토니아어 사전을 발간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고려인 동포 사회를 중심으로 아리랑 무용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한국에서 전통가곡공연단과 전통음악공연단이 방문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2016년 기준 에스토니아에는 재외동포 47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국적의 방문외국인은 1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