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네파

에세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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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신약성서〉에는 없지만 다른 기록들에 의해 여러 분파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에세네파는 남성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4,000여 명의 소수 집단이었고, 유대교의 믿음과 신조가 거의 같았으나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전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세속사회에 뒤섞여 살기를 거부하며 은거지에서 육체노동과 금욕생활을 하며 살았다. 안식일은 하루 종일 기도하고 토라를 묵상하는 방식으로 지켰다. 개종자들은 1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친 뒤 에세네파 구성원이 되었으나, 하느님에 대해 경건히 살 것, 사람들에게 정의로울 것,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에세네파의 모든 교리를 충실히 지킬 것을 서약한 2년 후에 공동체와 같이 식사를 했다.

〈신약성서〉에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요세푸스·알렉산드리아의 필로, 플리니가 전하는 기록들도 때로는 중요한 내용에서 일치하지 않는데, 이것은 에세네파 내에도 여러 분파가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에세네파는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이는 여자를 배제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재산을 공유했고,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리자에게 통제를 받았다.

에세네파의 구성원은 그 수효가 결코 많지 않았다. 플리니는 그당시 에세네파의 수를 약 4,000명으로 잡는다. 바리사이파와 마찬가지로 모세 율법, 안식일, 정결의식을 철저히 지켰고 불멸과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믿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와는 달리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고, 공공생활에 뒤섞여 살기를 거부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전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은거지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지내는 금욕생활에 만족했다. 안식일은 하루 종일 기도하고 토라(〈구약성서〉의 처음 5권)를 묵상하는 방식으로 지켰다.

맹세는 삼갔고, 한번 맹세를 하면 철회할 수 없었다. 개종자들은 1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친 뒤 에세네파 구성원의 표식을 받았으나, 그뒤 2년간 공동식사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구성원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경건히 살 것, 사람들에게 정의로울 것,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에세네파의 모든 교리를 충실히 지킬 것을 서약했다. 이렇게 하여 새 구성원이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점심과 저녁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40년대말과 1950년대에 키르바트쿰란 근처에서 사해두루마리가 발견된 이래 대부분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