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

에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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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03. 7. 31, 스웨덴 롱반쉬탄
사망 1889. 3. 8, 미국 뉴욕 시
국적 스웨덴/미국

요약 스웨덴 태생 미국의 조선기사·발명가.

에릭슨(John Ericsson)
에릭슨(John Ericsson)

스웨덴 군대에서 측량기사로 근무한 후, 1826년 런던으로 건너간 그는 1829년 랭커셔 레인힐에서 벌어진 철도경기(이 대회에서 조지 스티븐슨의 '로켓호'가 우승함)를 위해 증기기관차 '노벌티호'를 제작했다. 또한 에릭슨은 군함의 기관을 흘수선 아래에 설치하여 적의 포격으로부터 보호할 계획을 세웠다.

1833년 열기관을 선보인 후 남은 여생을 여기에 바쳤다. 1836년 특허를 얻은 그의 스크루 프로펠러는 런던에서 건조된 '프랜시스 B. 오그던호'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미해군의 로버트 스톡턴 대령은 에릭슨에게 '프린스턴호'라는 소형 철선에 기관과 소형 스크루를 설치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 배는 1839년에 뉴욕에 입항했다. 몇 개월 후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남은 여생을 뉴욕에서 보냈으며, 1848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남북전쟁중 '모니터호'를 건조하여 1862년 1월 30일에 진수시켰다. 이 배의 동력은 모두 증기력에 의존했다. 스크루 프로펠러를 장착한 이 배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데, 전함의 양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준 회전식 장갑포탑을 갖추었다. 같은 해 3월 9일 모니터호는 남부연합의 장갑함 '버지니아호'(예전에는 '메리맥'이라고 함)와 유명한 해전을 치렀다. 그뒤 연방정부는 남부연합의 봉쇄와 그밖의 해군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모니터함(뱃전이 낮고 회전포탑이 있는 옛 포함)을 에릭슨에게 더 많이 발주했다. 나중에는 어뢰개발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한 원동기에 대한 연구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