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

야수파

다른 표기 언어 Fauvism , 野獸派

요약 감정의 폭발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원색들을 도발적이고도 직접적인 수법으로 구사했으며, 야수파 작품에는 회화의 주제에 대한 강렬한 표현적 감응이 담겨 있다. 1905년 파리에서 처음 전시된 야수파 그림들은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비평가 루이 보셀은 작품들의 격정적 특성에 주목해 '야수'라는 호칭을 붙였다.
야수파의 주도적 화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그의 야수파 양식은 언제나 직관적인 형식적 질서의 감각이 그림을 지배한다. 그외 야수파 화가들로는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오통 프리스, 라울 뒤피, 조르주 브라크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야수파 화가들은 1908년경 폴 세잔의 영향으로 야수파의 격정적 정서를 거부하고 입체파의 논리성을 선호했다. 마티스만이 자신이 선구적으로 개척한 길을 고수했다.

야수파(Fauvism )
야수파(Fauvism )

감정의 폭발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화려한 원색들을 도발적이고도 직접적인 수법으로 구사했다. 야수파 화가들은 그 이전의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직접 보고 그렸으나 야수파 작품에는 회화의 주제에 대한 강렬한 표현적 감응이 담겨 있다. 1905년 파리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전시된 야수파 그림들은 연례 가을 살롱 전의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비평가 루이 보셀은 작품들의 격정적 특성에 주목해 그 화가들에게 '야수'라는 호칭을 붙였다.

야수파의 주도적 화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그는 후기 인상파의 거장인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등의 작품을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야수파 양식에 도달했다. 마티스는 체계적 연구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3차원 공간의 묘사를 거부하고 색채의 운동으로 규정되는 새로운 회화공간을 추구했다. 그는 1905년 전시회에서 〈모자를 쓴 여인 Woman with the Hat〉(샌프란시스코의 월터 A. 하스 미술관)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전시했다. 이 작품은 청색·녹색·적색을 주조로 하여 활달한 붓놀림으로 힘차고 풍부한 표현의 여인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티스의 야수파 양식은 언제나 직관적인 형식적 질서의 감각이 그림을 지배한다.

야수파의 다른 화가들로는 프랑스 샤투 출신의 두 화가, 앙드레 드랭과 모리스 드 블라맹크가 있다. 이들은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의 핵심을 이루었다. 드랭의 야수파 회화는 풍경화의 모든 색조를 원색으로 처리하고 짧고 힘찬 필치를 사용했다. 블라맹크의 작품에 나타나는 격앙된 색채의 소용돌이는 반 고흐의 풍부한 표현력에 영향받은 것이다. 또한 르아브르 출신의 젊은 화가 3명도 마티스의 강렬한 개성에 이끌려 야수파에 가담했다.

오통 프리스는 자신이 추구하던 평범한 인상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을 화려한 야수파적 색채의 감성적 함축을 통해 찾았다. 그의 동료 라울 뒤피는 자기 고유의 미학적 개성에 맞게 대담한 야수파 양식을 좀더 원만한 장식적 수단으로 해석해냈다. 또한 조르주 브라크도 작은 색점들을 이용하여 입체파로의 발전을 예고하는 명확한 율동감 및 구성감각을 창조해냈다.

1890년대에 마티스와 미술학교 동기생이었던 알베르 마르케가 야수파에 참여했고 네덜란드 화가 키스 반 동겐도 참여했다. 동겐은 야수파의 기법을 사용하여 파리 사교계를 묘사했다. 그밖에 야수파와 연관이 있는 화가로는 조르주 루오, 앙리 망갱, 샤를 카무앵, 장 퓌 등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야수파는 과도기적인 습작 단계였다. 1908년경에 자연의 질서와 구조에 관한 폴 세잔의 통찰력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그들은 야수파의 격정적 정서를 거부하고 입체파의 논리성을 선호했다. 마티스만이 자신이 선구적으로 개척한 길을 고수하면서 자신이 그리는 외부세계와 내면의 정서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형을 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