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즉리

심즉리

다른 표기 언어 心卽理

요약 만물의 온갖 이치가 마음에 다 갖추어져 있다는 왕수인(王守仁)의 학설(→ 양명학).

왕양명(王陽明)
왕양명(王陽明)

남송(南宋:1127∼1279)의 주희(朱熹)는 마음을 성(性)과 정(情)의 2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면서, 이 가운데 만물의 이치는 성에 구현된다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주장했다. 이에 반해서 육구연(陸九淵)은 정은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며, 본심이 천리(天理)임을 믿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자고 하여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주장했다. 왕수인은 육구연의 이와 같은 입장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이 이(理)를 낳았다고 하면서 성과 정을 모두 포함하는 마음 자체가 곧 천리라고 주장했다.

육구연과 왕수인의 심학은 맹자의 학문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맹자는 사단을 사람의 본성이 선한 근거로 보고, "모든 사물의 이치가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함으로써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를 선한 자아의 회복에 두고 있다. 자아의 회복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맹자는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양능(良能)이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양지(良知)이다"라고 하여 사람에게는 양지·양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양지·양능설을 확대·심화시킨 것이 왕수인의 심즉리설이다. 그의 심즉리설은 〈대학 大學〉의 격물치지에 대한 주희와의 해석 차이에서 출발했다. 주희는 격물의 격을 지(至), 물을 사물이라 하여 격물치지란 사물을 깊이 탐구하여 이치를 아는 것이라 해석했다. 반면 왕수인은 격을 정(正), 물은 사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뜻이 있는 마음 가운데의 물이라고 보아 격물은 마음의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치지의 지는 양지이며 치는 완성이니, 치지는 사람이 타고난 본연의 지, 즉 양지를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양지에서는 이기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심즉리설은 마음에 인간의 감정·욕망까지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기를 도외시한 채 이만으로 모든 본질과 현상을 설명하려는 육구연의 심즉리설에서 더 나아가, 사람의 본성을 본연과 기질(氣質)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파악하고 감정·인욕을 부정한 주희의 이론을 비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왕수인의 양명학(陽明學)은 조선 중기 이래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 이후 정제두(鄭齊斗)가 양명학을 깊이 연구하여 심즉리설 등 왕수인의 학설을 독자적으로 체계화했다.

맹자(孟子)
맹자(孟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