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알렉세이

다른 표기 언어 Aleksey (Aleksei) Nikolayevich , 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동의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Цесаревич 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Poмaнoв,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Alexei Nikolaevich
요약 테이블
출생 1904. 8. 25(구력 8. 12),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 페테르호프
사망 1918. 7. 16/17, 예카테린부르크
국적 러시아

요약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외아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Aleksey (Aleksei) Nikolayevich)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Aleksey (Aleksei) Nikolayevich)

재위중인 황제에게서 남자 상속자가 태어나기는 17세기 이래 알렉세이의 경우가 처음이었다. 선천적인 혈우병 때문에 조그만 상처라도 치명적인 출혈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무제한 출혈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의학적 처방이 없었다.

결국 심령술사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이 궁전에 불려들어가 출혈에 시달리는 황태자를 돌보았고, 고통을 덜어주는 데 성공했다. 최면술 요법이나 약으로 라스푸틴은 치명적인 순간에 몇 번 황태자를 살려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뒤 라스푸틴이 황궁에서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황제 내외가 로마노프 왕조의 희망인 알렉세이를 치료해준 데 대한 안도와 감사의 표시였다.

1917년 3월 황제는 두마(의회)가 퇴위를 요구하자 순순히 받아들였다. 처음에 그는 알렉세이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동생 미하일 대공을 섭정으로 앉히는 데 동의했으나 병약한 아들이 정치적 격동에 휩쓸리게 내버려둘 수 없음을 느끼고 생각을 돌려 동생에게 제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미하일은 국민의 뜻으로 추대받지 않는 한 제위에 오를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것으로 입헌군주제의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으며, 알렉세이는 볼셰비키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의 지하실에 구금되어 있다가 직계 가족과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