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리크

알라리크

다른 표기 언어 Alaric
요약 테이블
출생 370경, 페우체 섬(지금의 루마니아에 있음)
사망 410, 브루티움 코센티아(지금의 코센차)
국적 서고트

요약 알라리크는 800년 동안 외적의 침략이 없었던 로마를 침략하여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다.
귀족가문 출신으로 한동안 로마군 내의 고트족 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했으나, 395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직후 로마군을 떠나 서고트족의 족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로마를 침공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며, 결과적으로 원로원에게 압력을 넣어 서고트족이 막대한 보상금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서로마제국 황제 플라비우스 호로니우스가 그가 정복한 토지와 물자를 인정하지 않자, 410년 다시 로마를 침공해 3일간 800년 동안이나 외적에게 점령당한 적이 없던 로마를 약탈했다. 서고트족은 로마를 약탈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에게 온정적으로 대했으며 단지 몇 채의 건물만 불태웠다.

410년 8월 그의 군대가 로마를 약탈한 사건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상징했다.

귀족가문 출신으로 한동안 로마군 내의 고트족 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했으나 395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은 직후 군대를 떠나 서고트족의 족장으로 선출되었다. 자신의 부족이 로마인에게서 약속받은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구실로 알라리크는 서쪽으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향해 진군하다가 로마 병력에 가로막혀 방향을 돌렸다. 이어서 남쪽으로 그리스로 이동해 들어가 피라이오스(아테네의 항구)를 약탈하고 코린트와 메가라, 아르고스, 스파르타 등지를 습격했다.

동부 로마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는 마침내 397년 서고트족의 회유에 나서서 알라리크를 일리리쿰(지금의 서부 유고슬라비아 일부)의 군장관(magister militum)에 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401년 알라리크는 이탈리아를 침공했으나 402년 4월 6일 폴렌티아(지금의 폴렌초)에서 로마 장군 플라비우스 스틸리코에게 패배해 어쩔수없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철수했다. 두번째 침공도 패배로 끝났지만 알라리크는 로마 원로원에 압력을 넣어 결국에는 서고트족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만들었다. 408년 8월 스틸리코가 살해당한 뒤 로마에서 정권을 잡은 정파는 이민족을 배척했으며 로마 병사들을 부추겨 로마 군에 복무하는 이민족 부족들의 처자식을 학살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민족 병사들은 알라리크에게로 달아나 그의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켰다.

알라리크는 평화를 갈망했지만 서부 로마 제국 황제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는 그가 정복한 토지와 물자를 그의 것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알라리크는 로마를 포위공격해(408) 원로원이 그에게 또 다른 보상금을 지급하고 호노리우스와의 협상을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호노리우스는 여전히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409년에 알라리크는 또다시 로마를 포위하고 아탈루스를 황제로 선포한 이후 봉쇄를 풀었다.

아탈루스는 그를 문무장관(文武長官 magister utriusque militiae)에 임명했으나 그에게 아프리카로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호노리우스와 협상이 결렬되자 알라리크는 410년 여름 아탈루스를 폐위하고 3번째로 로마를 포위공격했다. 성내의 동맹세력이 8월 24일에 그를 위해 성문을 열어주어 3일간 그의 부대는 거의 800년 동안이나 외적에게 점령당한 적이 없던 로마를 약탈했다. 서고트족은 로마를 약탈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에게 온정적으로 대했으며 단지 몇 채의 건물만 불태웠을 뿐이었다. 아프리카를 점령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알라리크는 서고트족이 북쪽으로 행군하던 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