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3호분

안악3호분

다른 표기 언어 安岳三號墳 동의어 북한 국보 제28호

요약 북한 국보 제28호.안악3호분은 무덤축조연대가 비교적 확실하고 벽화의 내용이 풍부하여 4세기 중엽경의 고구려 문화를 복원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묘실은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짜여졌으며 널길의 방향은 남향이다.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묘실 내부공간의 석면 위에 벽화를 그렸는데 총면적이 139㎡에 달한다.
앞방 서벽의 남쪽 상단에는 연기가 있는 묵서명이 있어 무덤의 축조 및 피장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학자들간에는 안악3호분의 피장자를 동수로 보는 견해와, 고구려의 미천왕 또는 고국원왕으로 보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는데 아직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무덤벽화의 중심주제는 주로 인물풍속인데 무악도, 대행렬도 등 다양한 벽화가 포함된다.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북한 국보 제28호. 묘실은 현무암과 석회암 판석으로 짜여졌으며 널길의 방향은 남향이다.

널길[羨道]·널방[羨室]·앞방[前室]·좌우옆방[側室]·널방[玄室]·회랑으로 이루어진 다실분(多室墳)이며, 각 방의 천장은 3각굄형식이다. 널길에서 회랑에 이르는 묘실 내부공간의 석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렸는데, 벽화의 총면적이 139㎡(벽면 81㎡, 천장부 58㎡)에 달한다. 앞방 서벽의 남쪽 상단에는 연기(年記)가 있는 묵서명이 있어 무덤의 축조 및 피장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묵서명은 "永和十三年十月戊子朔甘六日 이미지이미지使持節都督諸軍事 平東將軍護撫夷校尉樂浪 相昌黎玄菟帶方太守都 鄕侯幽州遼東平郭 都鄕敬上里冬壽字 이미지安年六十九薨官"이라고 씌어 있다.

명문(銘文) 중의 영화 13년(永和十三年)은 동진(東晉)의 연호로 357년이며, 동수(冬壽)는 336년(고구려 고국원왕 6) 요동(遼東)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동수(冬壽)와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학자들간에는 안악3호분의 피장자를 동수로 보는 견해와, 고구려의 미천왕 또는 고국원왕으로 보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는데 아직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무덤벽화의 중심주제는 인물풍속이다.

널길의 동서벽에는 무덤을 지키는 병사가 그려져 있으나 석회의 박락이 심하여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렵다. 앞방 남벽의 서측과 동측에는 무악의장대(舞樂儀仗隊)를 그렸다. 서쪽 옆방 입구에 해당하는 앞방 서벽의 남측과 북측에는 옆방 내의 주인공을 모시는 두 인물의 입상이 그려져 있는데, 북측 인물의 머리 부근에는 장하독(帳下督)이라는 직명이 주서로 씌어져 있다. 서쪽 옆방 내부인 서벽에는 묘주인이, 남벽에는 묘주인의 부인이 연꽃 봉오리 장식의 장방 안에 앉아 주서로 기실(記室)·소사(小史)·성사(省事)·문하배(門下拜) 등의 직명이 씌어진 관리들의 보고를 받거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다.

묘주인의 초상은 정면향이며 부인은 비스듬히 묘주인 쪽을 향하고 있다. 동벽 북측에는 묘주인 부부를 모시는 무인상이 그려져 있다. 앞방의 동쪽 옆방 내부는 각종 생활도로 장식되었다. 그 서벽 북측에는 디딜방아를 다루는 하녀, 남측에는 색색의 말로 가득한 마구간을 그렸으며 남벽에는 소로 가득한 외양간, 북벽에는 용두레우물에서 물을 긷는 하녀들, 동벽에는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그 오른쪽에는 날짐승과 뭍짐승의 고기가 걸린 육고(肉庫), 왼쪽에는 마차를 넣는 차고를 그려넣었다.

주요기구와 인물들 곁에 확(確)·아비(阿婢)·정(井)·아광(阿光) 등의 글씨가 씌어 있다. 앞방과 널방 사이에 있는 여러 개의 8각돌기둥머리는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괴면(怪面)으로 장식되었다. 널방 동벽에는 무악도(舞樂圖)가 묘사되었다(안악3호분주악도). 널방의 동면에서 북면으로 이어지는 'ㄱ'자 회랑에는 25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대행렬도가 자리잡고 있다.

행렬은 우차(牛車)에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의 남녀시종들과 그 앞의 보병악대와 곡예꾼들, 뒤의 기마악대와 기마기수, 외곽의 호위보병과 기병들로 구성되었다. 널방 북벽의 뒷면, 곧 회랑 남벽에는 2층건물이 그려져 있고, 그 곁에는 경옥(京屋)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앞방 천장에는 일상과 월상이, 널방 천장에는 커다란 연꽃무늬가 그려졌다. 앞방과 널방 천장 굄부에는 간략한 당초무늬가 장식되었다.

안악3호분은 무덤축조연대가 확실하고 벽화의 내용이 풍부하여 4세기 중엽경의 고구려 문화를 복원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묘실의 주인공을 둘러싼 논의가 결말이 나지 않고 있어 보다 면밀한 연구를 필요로 하는 고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