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소설

악한소설

다른 표기 언어 picaresque novel , 惡漢小說

요약 소설의 초기 형태.

건달소설(乾達小說)이라고도 한다.

보통 1인칭 서술체로, 악한이나 태생이 천한 투기꾼(스페인어로 'pícaro')이 생존을 위해 무작정 떠돌아다니고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겪는 모험을 다룬다. 악한소설은 중세의 지루하고 산만한 기사도 로맨스에 최초의 짝을 이루며, 일화적 구성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기사도 로맨스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사도 로맨스의 주인공인 이상주의적으로 의협심이 강한 인물과는 달리 피카로는 조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명예로운 일보다는 재치로 살아보려 하는 냉소적이고 도덕관념이 없는 악한이다.

피카로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모든 사회계층, 온갖 직업의 사람들 속에서 모험을 하며, 때로는 독특한 거짓말과 사기 및 도둑질로 간신히 처벌을 모면한다. 그는 전반적인 사회규범과 관습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구속을 느끼지 않으며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될 때에만 규범이나 관습에 따르는 척한다. 그러므로 피카로의 이야기는 사회의 위선과 부패에 대한 반어적이거나 풍자적인 표현으로, 독자에게 천하거나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 관해 풍부한 관찰을 제공해준다.

악한소설은 스페인에서 〈라자리요 데 토르메스 Lazarillo de Tormes〉(1554, 불확실하지만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의 작품으로 추정됨)를 계기로 시작되었는데, 가난한 소년 라자리요가 위선의 뒤에 수상쩍은 성격을 숨기고 있는 7명의 평신도와 성직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인데, 거리낌없는 재치로 인해 당대에 가장 널리 읽힌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다음에 출판된 악한소설인 마테오 알레만의 〈구스만 데 알파라체 Guzmán de Alfarache〉(1599)은 이 장르의 진정한 원형이 되었으며, 스페인 소설에서 사실주의가 주요한 경향으로 자리잡는 데 이바지했다. 제노바의 파산한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가상적 자서전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창의성과 일화의 다양성 및 인물묘사에 있어 〈라자리요 데 토르메스〉보다 한층 풍부한 것으로, 역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구스만 데 알파라체〉의 뒤를 이어 나온 많은 작품들 중에는 세르반테스가 피카레스크 양식으로 쓴 단편들도 있으며, 〈Rinconete y Cortadillo〉(1613)·〈개들의 대화 El Coloquio de los perros〉(1613)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우베다의 〈버릇 없는 후스티나 La picara Justina〉(1605)는 피카로가 주인들을 속이듯이 애인들을 속이는 여자 피카로의 이야기이다. 프란시스코 고메스 데 케베도의 〈건달의 생애 Vida del Buscón〉(1626)는 이 장르의 걸작으로, 여기에서는 좀도둑과 사기꾼에 관한 심오한 심리적 묘사 밑에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깔려 있다.

〈건달의 생애〉 이후 스페인의 악한소설은 점차 모험소설로 기울어졌다.

한편 16세기 후반에 〈라자리요 데 토르메스〉가 프랑스어·네덜란드어·영어로 번역되면서, 피카로는 다른 유럽 문학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영국의 첫 악한소설은 토머스 내시의 〈불운한 여행자:잭 윌턴의 생애 Unfortunate Traveller, or, the Life of Jacke Wilton〉(1594)였다.

독일에서 피카로는 H. J. 폰 그리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 Simplicissimus〉(1669)로 재현되었다. D. 디포의 〈몰 플랜더스 Moll Flanders〉(1722)는 다시금 여자 피카로를 등장시켰고, 헨리 필딩의 〈조너선 와일드 Jonathan Wild〉(1725)·〈조지프 앤드루스 Joseph Andrews〉(1742)·〈톰 존스 Tom Jones〉(1749) 및 토비아스 스몰릿의 〈로더릭 랜덤 Roderick Random〉(1748)·〈방랑하는 피클 Peregrine Pickle〉(1751)·〈패섬 페르디난드 백작 Ferdinand, Count Fathom〉(1753) 등에서도 피카레스크적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악한소설로는 알랭 르네 르사주의 〈질 블라스 Gil Blas〉(1715~35)가 있는데, 이 작품은 스페인의 배경을 유지하면서 스페인의 잊혀진 소설들에서 사건들을 가져오고 있지만 좀더 점잖고 인간적인 피카로를 그리고 있다.

18세기 중반에는 좀더 엄밀하고 정교한 플롯과 좀더 세련된 인물묘사를 갖춘 사실주의 소설이 발전함에 따라, 악한소설은 예술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한소설이 온갖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얻어지는 풍자의 가능성, 여러 가지 산업 및 직업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사실적인 언어 및 세부묘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습과 도덕에 대한 냉소적이고 초연한 탐사 등은 사실주의 소설을 풍부하게 하고 18, 19세기에 사실주의 소설이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고유한 악한소설의 요소들은 니콜라이 고골리가 쓴 〈죽은 혼 Myortvye dushi〉(1842~52),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Huckleberry Finn〉(1884), 토마스 만의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ataplers Felix Krull〉(1954) 등의 성숙한 사실주의 소설들에서 다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