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아산시

다른 표기 언어 牙山市
요약 테이블
위치 충청남도 북부
인구 347,243 (2024)
면적 542.16㎢
행정구역 2개읍 9개면 6개동
사이트 http://www.asan.go.kr/

요약 충청남도 북부에 있는 시.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제조공장들이 입지해있으며, 공업단지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온천으로 유명하여 도고온천·아산온천·온양온천 등 세 곳의 온천이 있다. 이외에도 신정호관광지·영인산자연휴양림·공세리성당 등이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면적 542.16㎢, 인구 347,243(2024).

목차

접기
  1. 연혁
  2. 인구
  3. 연혁
  4. 자연환경
  5. 인구
  6. 산업과 교통
  7. 유물·유적·관광
  8. 교육·문화·의료·복지

대한민국 충청남도 북부에 있는 시.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되어 아산시가 되었다. 수도권의 배후 휴양도시로 개발되어 천안시와 함께 중부권의 중심도시로 발전되어왔다. 또한 서해안 종합개발 등 일련의 국가적 개발계획에서 새로운 공업단지 자리잡았다. 현충사를 비롯한 관광명소가 많은 곳이다. 행정구역은 염치읍·배방읍·송악면·탕정면·음봉면·둔포면·영인면·인주면·선장면·도고면·신창면·온양1동·온양2동·온양3동·온양4동·온양5동·온양6동 등 2개읍 9개면 6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19개동). 시청소재지는 시민로이다. 면적 542.16㎢, 인구 347,243(2024).

아산시
아산시

연혁

지금의 아산시는 옛 아산현·신창현·온양군이 1914년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염치읍·둔포면·영인면·음봉면·인주면 등 아산시의 북부 일대는 옛 아산현, 배방읍·탕정면·송악면 등 동남부 일대는 옛 온양군, 신창면·도고면·선장면 등 서남부 일대는 옛 신창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아산현은 본래 백제의 아술현인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인주로 고쳐졌으며,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아산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아산의 별호는 영인이었다. 아산만 공세곶은 공진창으로 불렸던 조창이 1478년(성종 9)에 설치되어 충청도 14개 고을, 뒤에는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했던 해운상의 요지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6년에 충청남도 아산군이 되었다. 1907년 월경지 정리로 아산의 비입지였던 이서면을 면천군에 넘겨주고, 천안의 비입지인 3개면과 수원의 비입지인 신홍포·신성포 등을 편입하여 면적이 넓어졌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인면·음봉면·인주면·염치면·둔포면으로 통폐합 되었다. 1917년에 초정면이 선장면으로, 학성면이 신창면으로 각각 개칭되고, 1941년에 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에 아산만방조제, 1979년에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어 지역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6년 온양읍이 시로 승격되어 아산군에서 분리되었으며, 1990년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아산시를 이루었다. 1997년 염치읍에 있던 시청사를 온천동으로 이전했다. 2009년 배방면이 배방읍으로 승격되었다(→ 신창현, 온양시).

인구

1995년 통합이전 온양시는 1986년 아산군 온양읍에서 승격되기 전에도 온천관광산업의 발달과 함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70년 3만 1,829명, 1980년 4만 7,313명으로 20년 동안 약 45%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으며, 시승격 직전인 1985년에는 5만 6,483명으로 증가해 시급 인구수준을 넘어섰다. 이후 1987년에 아산군 배방면 일부, 1989년에 아산군 염치면 일부를 편입하는 등 행정구역의 개편과 더불어 온천업의 호황에 힘입어서 1991년 6만 6,965명으로 증가했다.

한편 통합 전 아산군의 전체인구는 1985년까지 온양읍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에 힘입어 약간의 증감을 반복하면서 정체현상을 보였다. 1966~70년에는 산업화의 가속에 따른 급격한 인구유출로 인구수가 17만 1,858명에서 15만 8,104명으로 감소했다가 1975년까지 약 2.6%의 증가율을 보였다.그러나 1980~85년에는 15만 8,352명으로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렀다. 1986년에는 온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독립되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1990년에는 10만 4,020명이 되었다.

그러나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되어 현재의 아산시를 이룬 1995년의 인구는 15만 4,775명으로 증가했고, 이후 2000년 18만 7,503명, 2010년 27만 4,551명, 2015년 29만 7,737명을 기록하면서 크게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34만 7,243명이며 가구수는 15만 9,926가구, 가구당 인구는 2.17명이다. 동 지역에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특히 온양3동(3만 9,165명)의 인구가 많다. 읍면 지역에서는 배방읍(8만 7,484명)이 전체 지역 중 가장 인구분포가 높으며, 선장면(2,901명)에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2024).

연혁

지금의 아산시는 옛 아산현·신창현·온양군이 1914년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염치읍·둔포면·영인면·음봉면·인주면 등 아산시의 북부 일대는 옛 아산현, 탕정면·배방면·송악면 등 동남부 일대는 옛 온양군, 신창면·도고면·선장면 등 서남부 일대는 옛 신창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아산현은 본래 백제의 아술현인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으로 개칭, 탕정군(온양)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인주로 고치고, 995년(성종 14)에 자사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했다. 1018년(현종 9)에 천안에 소속되었다가, 후에 아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조선초인 1413년(태종 13)에 아산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으나, 1458~64년에 읍이 혁파되기도 했다. 아산의 별호는 영인이었다.

아산만 공세곶은 공진창으로 불렸던 조창이 1478년(성종 9)에 설치되어 충청도 14개 고을, 뒤에는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했던 해운상의 요지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5년에 홍주부 아산군, 1896년에 충청남도 아산군이 되었다. 1907년 월경지 정리로 아산의 비입지였던 이서면을 면천군에 넘겨주고, 천안의 비입지인 돈의면·덕흥면·모산면 등과 수원의 비입지인 신홍포·신성포 등을 편입하여 면적이 넓어졌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아산군의 현내면·이북면이 영인면으로, 일동면·일북면·이동면이 음봉면으로, 신흥면·일서면·이서면과 삼서면 일부가 인주면으로, 근남면·원남면과 삼서면 일부가 염치면으로, 삼북면·모산면이 둔포면으로 합해졌다. 이때 온양군과 신창군이 폐지되어 온양군의 동상면·동하면과 군내면 일부가 배방면으로, 군내면 일부와 서면·읍내면이 온양면으로, 남상면·남하면이 송악면으로, 이북면·일북면이 탕정면으로, 신창군의 대서면·북면, 아산군의 덕흥면이 초정면으로, 남상면·남하면이 도고면으로, 군내면·대동면·소동면이 학성면으로 폐합되어 아산군 관할이 되면서 면적이 크게 확장되었다.

1917년에 초정면이 선장면으로, 학성면이 신창면으로 각각 개칭되고, 1941년에 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에 아산만방조제, 1979년에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어 지역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6년 온양읍이 시로 승격되어 아산군에서 분리되었으며, 1990년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아산시를 이루었다(→ 신창현, 온양시).

자연환경

차령산맥이 시의 남동쪽을 지나 광덕산(699m)을 비롯한 망경산(望京山:600m)·봉수산(534m)·태화산(456m)·설화산(雪華山:441m) 등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북부에는 영인산(靈仁山:364m)·고용산(294m)·연암산(燕巖山:293m) 등 저산성 구릉이 발달하여 낮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북부에는 아산만이 내륙 깊숙이 만입해 있으며, 아산호와 삽교호가 조성되어 있다.

곡교천
곡교천

곡교천이 시의 중앙을 가로질러 삽교호로 흘러들며, 온양천(溫陽川)·천안천(天安川)·매곡천(梅谷川)·용두천(龍頭川) 등이 곡교천에 합류한다. 또한 시의 남서부 도고산(道高山 : 482m)에서 발원하여 무한천에 합류, 삽교호로 유입하는 도고천이 시의 서부를 북류한다. 이들 하천유역에 비옥한 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온양천이 합류하는 곡교천 유역의 탕정평야는 아산시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경기도와 도계를 이루는 둔포천 유역에는 하천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평야가 아산호 간척지에 이어져 있다. 시내 곳곳에는 염치·도고·송악·성내·봉재·수철·월랑·영인 저수지 등이 있어 이들 평야의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으며, 곡교천은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아산만공업지대의 공업용수로도 공급된다.

통합전 아산군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1.5℃ 내외이며, 1월평균기온은 -2.1℃ 내외, 8월평균기온은 24.9℃ 내외로서 비교적 온화한 편이나,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바람받이에 해당하기 때문에 혹한이 계속되기도 한다. 연평균강수량은 1,200㎜ 정도이다. 한편 통합전 온양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1.5℃ 내외, 1월평균기온은 -3.4℃ 내외, 8월평균기온은 25.1℃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219㎜ 정도이다.

삼림대는 대체로 소나무와 각종 활엽수 및 참나무 등의 혼효림이 분포한다.

인구

1995년 통합이전 온양시는 1986년 아산군 온양읍에서 승격되기 전에도 온천관광산업의 발달과 함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70년 3만 1,829명, 1975년 4만 1,519명, 1980년 4만 7,313명으로 1970~75년에 30.4%, 1975~80년에 14.0%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으며, 시승격 직전인 1985년에는 5만 6,483명으로 증가해 시급 인구수준을 넘어섰다.

이후 1987년에 아산군 배방면 일부, 1989년에 아산군 염치면 일부를 편입하는 등 행정구역의 개편과 더불어 온천업의 호황에 힘입어서 1991년 인구가 6만 6,965명으로 1985~91년에 18.6%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다. 한편 통합 전 아산군의 전체인구는 1985년까지 온양읍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에 힘입어 약간의 증감을 반복하면서 정체현상을 보였다.

1966~70년에는 산업화의 가속에 따른 급격한 인구유출로 인구수가 17만 1,858명에서 15만 8,104명으로 감소했으나, 1975년에는 16만 2,274명으로 1970~75년에 약 2.6%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1980년에 이르러 15만 7,572명으로 약간 감소했으며, 1985년에는 15만 8,352명으로 거의 정체상태에 있었다.

1986년에는 온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독립되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1990년에는 10만 4,020명이 되었다. 그러나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되어 현재의 아산시를 이룬 1995년의 인구는 15만 4,775명으로 증가했고, 2024년 기준 인구는 34만 7,243명으로 증가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55%가 거주하며, 통합 이전 온양시 지역이던 동지역에 45%가 거주하고 있다.

산업과 교통

총경지면적 199.07㎢ 가운데 밭이 60.78㎢, 논이 138.29㎢이며, 경지율은 36.72%이다(2006). 주요농산물은 쌀·보리 이외에 사과·배·포도·참외·수박 등이다. 특히 쌀이 전체농산물 생산의 80% 정도를 차지했으나, 우루과이라운드와 도시화로 인한 경지잠식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축산업도 활발하여 젖소·돼지·닭·사슴 등이 많이 사육된다.

한우
한우

임야는 지역 전체면적의 40.9%를 차지하며, 도토리·은행·호두·대추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아산만방조제·삽교천방조제 축조 이후 굴·조개 등의 양식이 많이 줄어든 반면 붕어·잉어 등의 내수면어업이 시작되었으며, 도고면과 선장면에서 뱀장어의 양식이 수출산업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공업은 섬유·전자·도자기·화학·기계 등의 소규모 경공업체가 대부분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수자원이 풍부한 둔포면·음봉면·배방면에 공장이 많다. 도고면과 송악면에서는 화강암의 건축석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6년 현재 제조업체 수는 676개소이며 종업원수는 4만 5,088명이다.

예로부터 아산시는 육로 및 해로의 이용이 편리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교역이 활발했다. 그러나 아산만방조제·삽교천방조제의 건설에 따라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증대되고, 현대적 유통구조에 밀려 정기시장의 기능이 점차 상실되었다. 온양온천을 중심으로 한 식당·숙박업 등 관광업이 발달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이 이 지역의 성장을 주도했다.

온양온천은 1933년 장항선이 개통되면서 일본인에 의해 현대식 욕탕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시역에는 총 70개 온천공이 있으며 이중 45개 온천공이 이용되고 있다. 장항선이 시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천안-예산을 잇는 국도가 철도와 거의 나란히 놓여 있다. 또한 천안-당진, 평택-공주, 안성-서산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도로총길이 782.03km, 도로포장률 53.8%이다(2006).

유물·유적·관광

온천과 아산이충무공유허(牙山李忠武公遺墟:사적 제155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현충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고장이다.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4, 사적 3, 중요민속자료 6), 도지정문화재(유·무형문화재 4, 기념물 7, 민속자료 3), 문화재자료 25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로는 청동기시대의 토기·석기가 곳곳에서 출토되어 청동기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현충사
현충사

산성으로는 신창학성(新昌鶴城: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4호)·배방산성(排芳山城:충청남도 기념물 제67호)이 대표적이며, 그밖에 영인산성·근덕리산성·꾀꼬리성·물한산성·연암산성이 있고, 연암산봉수지가 남아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읍내동에 아산읍내리당간지주(牙山邑內里幢竿支柱:보물 제537호), 온천동에 고려 후기의 온천리석탑, 조선 후기의 온천리석불(溫泉里石佛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 아산평촌리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제536호), 영인신현리미륵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4호) 등 다수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온양향교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3호)·아산향교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4호)·신창향교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5호)·아산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사적 제109호)을 비롯해 1476년(성종 7)에 건립된 신정비(神井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등이 있다.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국보 제76호)와 이충무공유물(보물 제326호) 등이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고, 1951년에 건립된 이충무공사적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가 있다. 1978년에 온양민속박물관이 건립되어 민속자료 수집·연구 및 전통문화 재현 등 한국 문화의 계승 발전과 함께 교육적 관광자원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용화동에는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했던 우물이라 해서 어의정 또는 어정어천이라 하는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해 1992년 7월에 복원했으며, 현재 약수터와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이 지역의 관광은 주로 온양온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유황온천인 도고온천과 음봉면 신수리에 아산온천이 개발되어 도시인들의 발길이 잦다. 온양온천은 한국의 온천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피부병·위장병·신경통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고속 버스터미널에 직접 연결되므로 수도권 관광객이 많다.

이외에도 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된 외암리민속마을이 있다. 특히 교육적 가치가 높은 현충사를 비롯한 아산향교, 이지함 공적비 등은 수학여행 코스로도 인기가 있으며,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 또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온양온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광 및 온천휴양권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있어, 관광지로의 개발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 온양향교·아산향교·신창향교·인산서원·도산서원이 있었다.

온양향교
온양향교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8년에 개교한 온양공립보통학교로 4년제 초등교육기관이었다. 1910년에는 신창면 읍내리에 신창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이어서 아산공립보통학교·둔포공립보통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51년 둔포중학교, 1952년 영인중학교가 설립되었다. 2017년 기준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60개소, 초등학교 43개교, 중학교 17개교, 고등학교 10개교, 특수학교 1개교, 전문대학 2개교, 대학교 4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1957년 개원한 온양문화원이 이 지역 일대의 지방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특히 1962년부터 매년 이충무공탄신기념일인 4월 28일을 전후하여 온양문화제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서는 이충무공탄신기념행사, 온행제왕 추모제, 왕실행차, 온천제, 온천아가씨 선발대회 및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민속놀이로는 연날리기·종경도(從卿圖)놀이·줄다리기·지신밟기·윷놀이·씨름 등이 있다. 특이한 행사로 음력 2월에 읍내동에서 행해지던 '머슴의 날' 행사가 있으며, 오랜 전통을 가진 씨름이 성행하고 있다(→ 머슴날). 설화로는 이지함·맹사성·이순신 등과 관련된 인물설화가 많으며, 〈청댕이고개 전설〉·〈환혼석(還魂石) 전설〉이외에 온천 관련 전설이 많이 전래되고 있다. 민요로는 타령 및 잡가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장타령〉·〈달거리〉·〈지치캐는 처녀〉가 대표적이다. 1992년 5월에 준공된 용화동의 올림픽 기념국민생활관은 체육·문화·예술 공연장 등 종합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밖에 도서관 2개소와 시민체육관이 있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1개소, 병원 8개소, 의원 132개소, 요양병원 11개소, 치과병원 77개소, 한방병원 1개소, 한의원 61개소, 부속의원 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8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523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2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33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3개소, 여성복지시설 2개소, 아동복지시설 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7개소, 어린이집 444개소가 있다.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 공사가 완공되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나 생태계 파괴로 인한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 인접시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공업입지지역이 되면서 공장가동에 따른 대기·수질 오염이 환경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관광휴양지로서 쾌적한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개발계획을 지양하고 관광관련업 및 제조업체들의 환경오염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