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

아몬

다른 표기 언어 Amon

요약 이집트에서 신(神)들의 왕으로 숭배된 신.
Amun, Amen, Ammon이라고도 씀.

아몬
아몬

원래는 이집트 중부 크문의 지방신이었다. 아몬 숭배는 테베까지 퍼졌으며, 멘투호테프 2세(BC 2007~1956 재위)가 다스릴 때에는 파라오의 수호신이 되었다. 또한 그 무렵에는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레와 동일시되었으며, 아몬 레가 되어 민족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몬 레는 사람의 모습을 띠었으며, 때로는 숫양의 머리 또는 숫양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아내 무트와 양자 크혼스와 함께 테베 사람들이 숭배하던 세 신 가운데 하나였다.

아몬이라는 이름은 '숨겨진 자'라는 뜻이며, 그의 형상은 불가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파란색으로 칠해졌다. 이 불가시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신왕국(BC 1567~1085) 때는 아몬의 전지성과 공명정대함이 널리 신봉되었으며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아몬의 영향력은 이집트의 정치적 안녕과 밀접하게 연결되기도 했다. 힉소스 왕조(BC 1630~1522) 때는 테베의 군주들이 아몬 숭배를 지지했다. 그들이 힉소스 왕조를 전복하고 제국을 세운 이래로 아몬의 지위는 높아졌고 그 신전의 부는 증가했다. 제18왕조 후기에 파라오 아크나톤은 아몬 숭배에 반대하는 종교개혁에 앞장섰지만 평민들이 아몬과 그외 다른 신들에 대해 갖고 있는 신앙을 바꾸어놓는 데 실패했으며, 투탕카멘·아이·호렘헤브의 시대(BC 1332경~1292경)에 아몬은 점차 제국의 신과 파라오의 수호신으로 복원되었다.

제19왕조(BC 1252~1190) 때 아몬의 제사장들 가운데 신학자들은 아몬이 프타 및 레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며, 프타와 레를 포함한 다른 모든 신들은 단일신 아몬 안에서 현시한다고 생각했다. 테베에서 아몬의 제사장들이 신정정치를 펼치는 동안(BC 1075~945) 아몬은 세계신으로 발전하여, 그 권세는 이집트의 경계를 넘어섰다. 리비아인의 왕조가 출현하고(제22왕조), 이집트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고(BC 671~663), 테베가 약탈당했음에도(BC 664/663) 이집트에서 아몬 숭배가 차지하는 지위는 줄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몬 숭배가 이집트 민족주의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몬 숭배는 누비아의 쿠시인들 사이에서도 자리잡게 되었다. 쿠시인이 이집트를 침공하여 제25왕조를 세울 때(BC 715~671) 아몬을 숭배하는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환영했다. 이때부터 테베에서는 이민족의 이집트 점령에 대한 저항이 드세게 일어났으며, 아몬 숭배는 오아시스에까지 퍼졌다. 특히 이집트 서쪽 사막에 있는 시바라 불리는 오아시스에서 아몬은 쥬피터와 연결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점령하였을 때 이집트 사람들은 시바에서 신탁을 구하여 그를 파라오로 받아들였으며, 알렉산드로스도 룩소르에 있는 아몬의 신전을 새로 단장해주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초기의 왕들은 다른 신전들을 지원함으로써 이집트 민족주의를 억제했다. 그러나 BC 217년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때부터 상이집트에서는 민족주의적인 반란이 터져나왔다. 프톨레마이오스 9세 소테르 2세는 이 반란들 가운데 하나를 진압한 후, BC 88~85년에는 반란중인 테베를 약탈하여 아몬 숭배에 큰 타격을 가했다. BC 27년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테베에 있는 신전들이 크게 파괴되었으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이시스와 오시리스 숭배가 점차 아몬 숭배를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