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극

신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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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양의 멜로드라마를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일본 신파극에 한국적 특수성을 가미해 멜로드라마로 만든 극. 신파극이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합의된 개념이 아니라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담은 보통명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파극의 특성은 멜로드라마의 일반적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우연적인 사건전개, 과도한 정서의 분출, 선악의 이분법이라 할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신파극의 특성은 대체로 패배주의를 구현하고 이를 자학적으로 카타르시스해내는 작품구조라 하겠다. 또한 신파극은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없는 통속적인 줄거리이나, 작품 속에는 당대의 대중심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파극(新派劇)
신파극(新派劇)

서양 멜로드라마를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일본신파극에 한국적 특수성이 가미되어 한국적 멜로드라마로 탄생된 것을 신파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 멜로드라마에는 신파극 이외에도 여러 유형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신파극의 단순한 변종이거나 또는 신파극과 제2의 요소를 결합시켜 새로운 유형을 만든 것이다. 멜로드라마라는 용어가 그러하듯이 신파극이라는 용어 역시 명확하게 합의된 개념이 아니라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담은 채 '과장벽이 있음', '울고 짜고 하는 제스처를 씀' 등의 의미를 지닌 보통명사로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일본에서는 자유민권운동(1870~80) 시기에 전래의 가부키[歌舞伎] 연극을 구파라 하고 정치선전극을 신파라 지칭했다.

1911년 일본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임성구가 조직한 한국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이 일본신파극의 번안작인 〈불효천벌 不孝天罰〉을 가지고 창립공연을 가진 데 이어, 1912년 윤백남이 문수성(文秀星)을, 이기세가 유일단(唯一團)을 창단한 것을 비롯해 이후 전국에서 40여 개의 신파극단이 생겨났다. 이질적인 정서를 지닌 일본신파극이 한국에 이식되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어 화제가 되었던 소설 〈장한몽 長恨夢〉을 들 수 있다. 〈장한몽〉은 일본신파극의 대표작인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곤지키야샤 金色夜叉〉를 조중환이 번안한 작품으로, 소설·연극·영화·노래 등 다양한 분야로 만들어져 신파를 뿌리내리게 했다.

신파극의 특성은 멜로드라마의 일반적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우연적인 사건전개, 과도한 정서의 분출, 선악의 이분법이라 할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신파극의 특성은 대체로 패배주의를 구현하고 이를 자학적으로 카타르시스해내는 작품구조라 하겠다. 또한 신파극은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없는 통속적인 줄거리이나, 작품 속에는 당대의 대중심리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특정한 사회적·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파극의 등장인물은 멜로드라마처럼 성격과 행위의 주체성을 결여한 채 줄거리 구조에 종속되어 있다. 따라서 신파극은 창조적 작가정신이 뒤따라 새로운 요소와의 변증법적인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동일한 형식을 반복하는 진부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신파극의 번안작이자 한국 최초의 신파극인 〈장한몽〉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심순애'라는 인물을 통해 일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근대화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간접적으로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뒤 한국의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1930년대에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공연된 이후 신파극은 '결함을 지닌 주인공의 자학적 뒷걸음질'이라는 구조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