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신도

다른 표기 언어 Shinto , 神道 동의어 유신도, 惟神道, 신교, 神敎, 덕교, 德敎, 대도, 大道

요약 신도는 일본인들의 정신생활의 기반이 되어온 민족신앙으로 조상의 유풍을 따라 신을 받들어 모시는 국민 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현상을 포함해서 말하기도 한다. 신도의 개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특정한 교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모든 생활의 중심적 행사로서 제사의 장에서 발생한 것이며, 따라서 광범한 정신현상·사회현상에 관련되어 있어 신앙·종교의 범위에서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신도라는 말이 쓰인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혼쇼키〉의 요메이 덴노조의 '덴노는 불법을 믿고 신도를 높인다'와 고토쿠 덴노조의 '불교를 높이고 신도를 경시한다'이다. 여기서 신도는 당시 대륙에서 전래된 불교에 대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온 신앙을 가리킨다.

목차

접기
  1. 분류
  2. 역사
  3. 일본 문화 속의 신도
신도(Shinto)
신도(Shinto)

일본에서 발생하여 유교·불교 등 외래 종교·사상과 대립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여 일본인들의 정신생활의 기반이 되어온 민족신앙을 말한다. 나아가서 그 민족신앙을 근저로 한 국민도덕·윤리·풍속까지를 포함하여 말하기도 한다.

〈역경 易經〉·〈후한서 後漢書〉를 보면 신도라는 말이 고대 중국에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둘 다 일본에서의 어의와는 전혀 달라 '신도'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사용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신도라는 말이 쓰인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혼쇼키 日本書紀〉의 요메이[用明] 덴노조의 '덴노는 불법을 믿고 신도를 높인다'와 고토쿠[孝德] 덴노조의 '불교를 높이고 신도를 경시한다'이다. 여기서 신도는 당시 대륙에서 전래된 불교에 대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온 신앙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신도 외에 본교·신습·신교·대도 같은 말도 쓰였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신도라는 말만 남게 되었다.

니혼쇼키(Nihon shoki)
니혼쇼키(Nihon shoki)

신도의 개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특정한 교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모든 생활의 중심적 행사로서 제사의 장에서 발생한 것이며, 따라서 광범한 정신현상·사회현상에 관련되어 있어 신앙·종교의 범위에서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도란 가설적으로 말하면 조상의 유풍을 따라 가미[神:신앙의 대상]를 받들어 모시는 국민 신앙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현상을 포함해서 말할 수도 있다.

신도(Shinto)
신도(Shinto)

분류

신도는 그 내용에 따라 편의상 신사신도(神社神道)·교파신도·국가신도·궁정신도·학파신도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에 신사신도와 교파신도는 제사와 교법에 의한 분류이다. 신사신도란 전국의 신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제사의례를 포함한 신앙조직적인 것을 말하는 데 비해, 교파신도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이후 교리·교법을 세워 교단을 조직한 신도 교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이 교파신도는 종교로 취급되어 불교·그리스도교 등과 마찬가지로 문부성 종교국의 감독을 받았으며, 국가의 보장이나 지원을 받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신사신도는 국가의 종사(宗祀)로서 내무성 신사국에 속했으며, 1945년까지 국가의 보장 및 지원을 받아왔다. 이런 점에서 신사신도와 국가신도의 구별이 불분명해지는데, 1945년 12월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서 발표한 신도지령에 의하면 신사신도란 민간적·개인적·일반종교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국가신도란 정부에서 보장·지원·보전·감독한 국교적인 것,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교학이라고도 할 만한 것으로, 국민에게 강요한 것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신사신도라는 말은 전국 신사의 포괄 단체인 종교법인 신사 본청(本廳)의 청규(廳規)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받드는 이세[伊勢]의 신궁을 본종(本宗)으로 전국의 신사를 숭배하고, 그 제사를 중심으로 하여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며 문화를 형성하는 민족의 정신적인 영위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국가신도는 소멸되었다. 궁정신도는 가시코도코로[賢所]·신덴[神殿]·고레이덴[皇靈殿] 및 능·묘에 대한 왕실의 제사를 중심으로 하여 일컫는 말이다. 학파신도란 고전 등에 의해 신도이론·신도신학을 수립한 교학을 중심으로 한 것의 총칭이며, 중세에서 근세의 이세 신도, 요시다[吉田] 신도, 유가(儒家) 신도, 복고신도 등이 포함된다.

역사

신도의 원초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농경문화, 그중에서도 벼농사와 큰 관계가 있으며 농경생활이 정착하기 시작한 무렵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농경이 시작되었을 때 그 공동체 생활 속에서 농경에 관련되어 행해진 제사로부터 신도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구체적으로 접하는 자연물이나 자연현상 등에서 인력(人力) 이상의 서물숭배적(庶物崇拜的)인 가미의 관념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상숭배를 신도의 근원적 신앙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모든 조상을 외경의 대상으로 본 것은 훨씬 뒤의 일이며, 대륙문화의 영향도 보인다.

다만 농경 중심의 혈연적 동족집단에서 가장(家長)이나 씨족장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고, 그것이 사후(死後)에 정화되어 가미로서 숭배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숭배·서물숭배·조상숭배에 가미의 관념이 있다고 해서 고대인이 그 모두를 제사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가미로서 제사의 대상이 된 것은 자신들의 생활에 고마운 작용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이었다.

그 가미의 영혼, 사물의 작용이 직접 그들의 생활에 관련될 때 비로소 제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대륙과의 교통도 시작되어 도교·음양도·유교·불교 등이 유입되었는데, 도교·음양도의 주술적인 면은 빨리 수용되었으나 유교·불교는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서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불교 장려책 이후 불교사원이 본격적으로 조영되었는데, 그 영향을 받아 신도에서도 신사를 건축하여 제사를 지내게 된 듯하다.

이어 중국의 영향으로 천신지기(天神地祇)의 구별도 인식되어 신기제도(神祇制度)가 정비되었다. 701년 제정된 다이호 령[大寶令]에서 볼 수 있는 신기제도의 기초는 이미 아스카키요미하라 령[飛鳥淨御原令]에서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율령체제의 정비와 함께 신기제도가 정비되어 신사제사도 정례화·국가화하여 신사가 국가와 결부되었다.

한편 8세기에는 불교가 흥륭함에 따라 8세기말부터 9세기에 걸쳐 불(佛)은 신(神)보다 훨씬 우위에 위치했으며, 신은 인(人)보다 상위에 위치하나 그래도 인과 마찬가지로 번뇌에 고민하는 중생의 하나로서 그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도 수행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후 신·불의 관계관은 변화해 10세기에 신과 불은 본래 동일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806년의 〈신초격칙부초 新抄格勅符抄〉에 나타난 신기행정에 대해 살펴보면 전국 신사의 경제적인 기반을 국가가 상당히 보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엔기시키 延喜式〉(927)를 보면 신기제도가 완성된 양상을 볼 수 있다. 10세기 후반 율령제가 흔들리자 신기제도도 혼란을 겪었고, 12세기에는 신불습합설(神佛習合說)이 발전하여 진언종(眞言宗)과 결부된 진언신도, 천태종(天台宗)과 결부된 천태신도 등의 신앙이 나타났다.

율령제 붕괴 이후 신사의 경제적 기반도 공적인 것에서 장원적인 사령(社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신사사령이 바쿠후[幕府]에 의해 소유권을 인정받음과 더불어 서민이 자신을 자각하면서 나름대로의 신앙을 되찾게 되었다. 1180년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는 거병 이후 신사·신궁을 특별히 경배했다.

그는 사령의 확보를 꾀하고, 사전(社殿)의 수복·조영에 힘썼으며, 제사 의식이 법규대로 행해질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이 가마쿠라 바쿠후의 신사정책의 근본이 되었다. 그후 이세신도 사상은 대성하게 되나 남조(南朝)의 쇠퇴와 함께 쇠했으며, 전국 쟁란과 함께 각 신사 사령이 약탈되고 피폐된 신사들이 많았다. 전국 쟁란 후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신도 부흥에 힘썼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를 계승했다.

왕정복고와 함께 메이지 신정부는 그 정치이념을 복고(復古) 신도사상에 두고 제정일치의 정신으로 임했다(메이지 유신). 1869년 신기관을 부흥했고, 1871년에는 신사를 국가의 종사(宗祀)로 했으며, 사가제도(社家制度)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무렵 한편에서 세계의 대세에 순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신기관은 폐지되고, 1889년 헌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신도는 국가의 종사로서 일반 종교와 별도로 여겨져 종교가 아닌 도덕으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일반 신사는 내무성 관하에 두었고, 1940년 내무성 신사국으로 바뀌어 신기원이 설치되었는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국가기관으로서의 신기원은 폐지되었다. 이듬해 2월 전국 신사의 포괄 단체인 신사본청이 민간 주도로 조직되어 현재 대부분의 신사가 그에 포괄되어 있다.

일본 문화 속의 신도

신도는 일본인의 생활, 일본인적 사고, 일본 문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에서 말하는 가미에 자연숭배·서물숭배·조상숭배 등에 속하는 것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열등 자연교라는 견해도 있는데, 그 가미는 탁월하고 신비한 능력을 갖는 존재로서 신앙상의 대상이다.

그것이 신앙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가미의 힘, 영혼의 작용이 자기 자신에게 관련되기 때문이며, 그 관련은 자기 자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신도에서는 사람도 본래 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가미에 의해 생명이 주어진 존재, 이 세상에 무언가의 사명을 받고 태어나게 된 존재라고 본다. 그 본래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해주는 것이 가미이다. 신도에서 보는 가미, 그것은 생활적이며 현실생활의 신세화를 하도록 해주는 존재이다.

자연숭배·조상숭배는 자연과 혈족에 대한 정조, 자연본성적인 애착과 찬미귀일에 기초를 두는 것으로서, 그 자연 혹은 시조의 제사는 지연적·혈연적 공동체 생활의 신세화·통합화의 구실을 수행하는 것이다. 신도에서는 자신이 사는 세계에 입각하여 가미를 인정한 것이며 그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신령의 표현으로 보기 때문에 다신교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에서 커다란 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