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페너

슈페너

다른 표기 언어 Philipp Jakob Sp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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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35. 1. 23, 북알자스 라폴츠바일러
사망 1705. 2. 5, 베를린
국적 독일

요약 신학자, 저술가, 독일 경건주의의 주도적 인물.

독일 경건주의는 17, 18세기 루터교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개인의 진보와 정직한 행동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했다. 슈페너는 초기에 루터교 신학자 요한 아른트와 영국의 설교가 리처드 박스터 같은 청교도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하던 시절(1651~59) 루터교 정통신학과 관행을 개혁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성직구조와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는 성직자들의 태도를 비판했다.

슈페너는 31세에 마인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루터교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신자 개인의 영적 성장, 기도, 성서공부를 장려하기 위한 모임인 '경건학교'(collegia pietatis)를 시작했다. 슈페너는 또한 독일의 목사들과 폭넓은 교제를 나누었는데, 이것은 그의 주요저서 〈경건의 소망 Pia Desideria〉(1675)과 함께 경건주의를 성장시키는 데 공헌했다.

〈경건의 소망〉은 경건주의의 기본 프로그램을 요약한 것으로, 슈페너는 이 책을 통해 독일전역에서 경건주의 운동의 대변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슈페너는 교리에 손상을 줄 정도로 지나치게 실천을 강조한다는 평도 종종 받았다. 그러나 당시 벌어지고 있던 교리투쟁을 보고 깊이 걱정했으며, 그 대부분을 해롭고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했다. 1686년 슈페너는 당시 독일 루터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드레스덴 왕실 수석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곧 그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라이프치히대학교와 작센 왕실의 루터교 정통파들이 경건주의를 비난하고 나섰다. 슈페너는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3세를 주정뱅이라고 비난한 바 있었다.

1691년에 슈페너는 베를린으로 가 장크트니콜라스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 왕실의 지원을 받아 많은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 1694년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가 경건주의를 기반으로 세운 할레대학교에서 슈페너는 제자 크리스티안 토마시우스와 아우구스트 H. 프랑케에게 교수 자리를 알선해주었다.

슈페너가 죽을 때쯤에는 독일의 경건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 영향은 영국과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는 30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영적인 제사장직 Das geistliche Priestertum〉(1677)·〈일반 신학 Die allgemeine Gottesgelehrtheit〉(1680)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