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설체

송설체

다른 표기 언어 松雪體

요약 중국 원나라의 서예가인 조맹부(趙孟頫 : 1254~1322)의 글씨체.

그의 호를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조체(趙體)라고도 한다.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던 송대의 서풍과는 달리 조맹부는 전통, 즉 진당(晉唐) 이전으로의 복고를 주장하여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바탕으로 필법이 굳세고 결구가 정밀하면서도 유려한 서체를 완성했다.

해서·행서는 물론 당시에는 잘 쓰이지 않던 초서·전서·예서까지도 연구했다. 송설체는 중국에서 한림원체(翰林院體)라 하여 판본에도 널리 사용되었고 청나라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는 고려말 원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충선왕이 베이징[北京]에 세운 만권당(萬卷堂)을 통해 조맹부와 직접 교류가 있었으므로 고려에 그의 서적이 유입되었고, 많은 문인들이 베이징을 왕래하며 그의 서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암(李嵓 : 1297~1364)·이제현(李齊賢 : 1287~1367) 등이 유명한데, 특히 이암은 조맹부 필법의 진수를 체득하여 귀국한 뒤 처음으로 송설체를 전한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 이용(李瑢 : 1418~53)을 위시하여 집현전을 중심으로 그와 교유하던 문사들과 최흥효(崔興孝)·성임 등이 송설체를 사용했다. 그후 조선 중기까지 200여 년 동안 해서·행서에서는 거의 송설체가 지배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