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자

다른 표기 언어 Sun tzu , 孫子

요약 손자는 보통 손무 또는 손무의 후예 손빈에 대한 경칭이다. 손무는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이며, 일찍이 <병법> 13편을 오왕에게 보이고 그의 장군이 되었으며,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무찔렀다. 군대를 중시했으며 "적과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손자병법>은 중국 최초의 병서이다.
손빈은 전국시대의 전략가이며 일찍이 방연과 병법을 공부했다. 위나라 혜왕의 장군이 된 방연은 손빈의 재주를 시기해서 그를 위나라로 불러들여 무릎뼈를 도려내는 형벌인 빈형을 가했다. 후에 제나라 위왕의 참모가 된 손빈은 전쟁을 수단으로 중국을 통일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전쟁 중 사람의 주관적인 능동작용을 중시하여 "천지간에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했다. 저서 <손빈병법>은 당나라 이후에 유실되었는데, 1972년 인췌 산 한묘에서 그 죽간이 발굴되었다.

손자(Sun tzu)
손자(Sun tzu)

보통 손무(孫武) 또는 손무의 후예 손빈(孫臏)에 대한 경칭이다. 손무는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이다. 일찍이 〈병법〉 13편을 오왕(吳王) 합려(闔閭)에게 보이고 그의 장군이 되었으며, 대군을 이끌고 초(楚)나라를 무찔렀다. 군대를 중시했으며 "적과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고 주장했다.

즉 적과 나의 상황을 파악하고 군사의 많고 적음, 강약(强弱)·허실(虛實)·공수(攻守)·진퇴(進退) 등의 형세를 잘 분석하여 적을 제압하면 승리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전략전술을 활발하게 운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저서 〈손자병법〉은 중국 최초의 병서이다. 1972년 산둥 성[山東省] 린이 현[臨沂縣] 인췌 산[銀雀山]에 있던 한묘(漢墓)에서 죽간 〈손자병법〉 13편이 출토되었는데, 기본적으로 당시 통행되던 송본과 같다.

손빈은 전국시대의 병가이며 일찍이 방연(龐涓)과 병법을 공부했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惠王)의 장군이 되었는데, 손빈의 재주를 시기해서 위나라로 그를 불러들여 빈형(臏刑 : 슬개골을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이로 인해 손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손빈은 후에 제나라 위왕(威王)의 군사(軍師 : 참모)가 되었는데, 위왕은 계릉(桂陵)과 마릉(馬陵)에서 위군(魏軍)을 차례로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손빈은 전쟁을 수단으로 삼아 중국을 통일할 것을 주장했고, 전쟁중에 특히 사람의 주관적인 능동작용을 중시하여 "천지간에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天地之間莫貴於人)고 했다. 단지 좋은 무기에만 의지하는 것으로 강대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갑옷의 견고함이 병사를 이롭게 하나,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甲堅利兵不得以爲强)라고 했다. 저서 〈손빈병법〉은 당나라 이후에 유실되었는데, 1972년 인췌 산 한묘에서 그 죽간이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