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든
다른 표기 언어 Philip H(enry) Sheridan출생 | 1831. 3.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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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8. 8. 5, 매사추세츠 논퀴트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의 기병대 장교.
전쟁 마지막 해에 과감한 군사 지휘력을 발휘하여 남군을 격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욕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1853)한 뒤, 주로 변경주둔지에서 근무하다가 1862년 봄 제2 미시간 기병대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7월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자기 부대를 교묘하게 산개시켜 미시시피 주 분빌에서 대규모 남부연합군을 패주시켰다. 그해 10월 여단장이 되면서 계속되는 공격에 대비해 켄터키 주 페리빌에 진을 치고 있던 오하이오 군 제11사단을 지휘했다. 테네시 주 스톤스 강(또는 머프리즈버러) 전투(1862. 12~1863. 1)에서 북군 우측 중앙부를 확고히 방어한 공로로 의용군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지아 주 치카모가 강 전투(1863. 9)에서 패배당했으나, 2개월 뒤 테네시 주 채터누가 아래쪽 미셔너리리지를 공격하여 서부지역 전투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곳에서의 승리에 깊은 감동을 받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은 1864년 봄 그를 동부로 불러 포토맥군 기병대의 지휘를 맡겼다. 1864년 5월 윌더니스 전투에 참여한 뒤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를 공격해 상당량의 남부연합군 보급품과 철도 차량을 파괴했다. 이 싸움에서 남군의 위대한 기병대장 J. E. B. 스튜어트 장군이 전사했다.
8월 4일 셰넌도어 계곡 주둔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셰리든은 이 비옥한 계곡에서 남부연합군을 몰아내고 3년 이상이나 남부 수도를 방어할 수 있게 해준 남군의 식량기반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버지니아 주 제3차 윈체스터 전투(9월)에서 주벌 A. 얼리 장군을 윈체스터 밖으로 몰아냈으며, 그다음 몇 주 동안 2차례 더 승리를 거둔 뒤 소장으로 진급되었고 의회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셰넌도어 계곡에서 임무를 완수한 그는 1865년 3월 피터즈버그 전방에서 자신의 기병대와 재합류했다. 자신의 지휘권 아래 편입된 제5군단 보병부대를 이끌고 남부연합군의 로버트 E. 리 장군의 철로 수송을 차단하기 위하여 피터즈버그 시 남쪽과 서쪽을 포위했다. 3월말에는 2차례에 걸쳐 남군의 우익과 후방을 공격하여 리치먼드-피터즈버그 전선으로부터 리 장군을 서쪽으로 퇴각시켰다. 그는 계속해서 리 장군의 남쪽 측면 부대를 공격해 애퍼매턱스 근처에서 그의 도주로를 차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 그는 멕시코 만에 배치되었으며, 텍사스 국경을 따라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1867년 프랑스에 의해 멕시코 제위에 오른 꼭두각시 황제 막시밀리안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뒤 루이지애나 및 텍사스 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1867). 그러나 남부에 대해 가혹한 재건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뒤 1883년까지 서부 사령관을 지냈다. 인디언 원정(1868~69)을 계획하고 성공리에 수행하여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1883년 육군 대장이 되었으며 5년 뒤에는 미국 육군 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죽기 몇 개월 전부터 회고록을 썼다. 그에 관한 권위 있는 전기로는 리차드 오코너의 〈셰리든, 필연적 운명 Sheridan, the Inevitable〉(195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