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주크

셀주크

다른 표기 언어 Seljuq

요약 오구즈(구즈) 투르크멘 부족의 집권 군인가문.
Seljuk라고도 씀.

11세기에 서아시아를 침공해 메소포타미아·시리아·팔레스타인 및 이란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제국을 세웠다.

이들의 진출은 중동지역에서 투르크 권력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10세기 중앙 아시아와 러시아 동남부로부터 투르크민족들이 이주하는 동안 셀주크라는 이름의 족장이 이끄는 한 유목부족은 시르다리아(작사르테스) 강의 하류지방에 정착했다. 이들은 나중에 이슬람교 수니파로 개종했으며 사만 왕조와 나중에는 간자의 마무드가 이끄는 변경수비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셀주크의 두 손자 차그리 베그와 토그릴 베그는 페르시아의 지원을 얻어 그들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으며 그결과 차그리는 호라산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1063년 그가 죽은 후 동생 토그릴은 이란 서부와 메소포타미아를 포괄하는 제국의 수장이 되었다.

알프 아르슬란말리크 샤가 통치하던 때의 셀주크 제국은 이란 전역, 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권을 확대했으며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티움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티움의 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 황제를 포로로 붙잡았다.

이로써 투르크멘 부족 사람들이 소아시아에 정착할 길이 열렸다. 토그릴 베그가 1055년 바그다드에서 부와이 왕조에게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셀주크는 수니파 칼리프 주도하에 이슬람의 통일을 회복시킨 존재로 여겨졌다. 알프 아르슬란과 말리크 샤가 이집트 변경지대까지 제국을 확장하는 동안 두 사람 밑에서 와지르(총리)로 일하던 니잠 알 물크는 제국내 행정조직을 감독했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특색이 강했던 셀주크 제국은 이슬람 문화에 크나큰 유산을 남겼다.

셀주크의 지배시기에 마드라사(Madrasah : 이슬람 신학교) 조직이 형성되어 국가 행정기관의 관료들과 종교학자들에게 통일된 교육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술탄들이 세운 많은 모스크 가운데 매우 훌륭한 건축물로 이스파한(Masjed-e-Jāme⁽)이 있다. 또한 셀주크 제국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된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했다. 투르크의 셀주크 제국에는 이슬람 전통이 없었으며 또한 고유한 문학 유산이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셀주크 제국 사람들은 페르시아 선생들이 사용하는 페르시아어를 이슬람의 문화적 언어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페르시아 문학이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아랍 언어는 종교서적들을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이 제국은 테러주의 분파인 아사신의 성장을 막지 못했으며 1092년 와지르 니잠 알 물크가 이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게다가 죽은 통치자의 아들들에게 영토를 분할해 나누어주는 셀주크 가문의 관행에 따라 독립적이면서도 불안정한 공국들이 수없이 탄생됨으로써 제국은 점차 약화되어갔으며 권력쟁취를 위한 피비린내나는 다툼이 잇따랐다.

1194년 이란의 마지막 셀주크가 전사하고 1200년경 셀주크 권력은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끝났다.

알프 아르슬란이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거둔 승리는 오구즈 부족민들에게 비잔티움 변경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들은 곧 그 지역의 전투에서 용병으로서 지위를 굳혔다. 동로마 제국의 왕위를 놓고 경쟁하던 장군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됨으로써 이들의 영향력은 강화되었으며 점차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동맹세력으로서 아나톨리아에 대한 통제권을 떠맡게 되었다.

이들은 1097년 십자군에 의해 내륙지방으로 쫓겨갔으며 또한 동부지방에서는 소란스런 여러 부족들의 난맥상에 둘러싸여 있다가 아나톨리아 지역에 자신들의 룸 술탄국을 건설했다. 왕국의 주민들은 그리스도교도,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시리아인, 이란 이슬람교도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룸 술탄국은 당시 사람들에게 '투르크'로 간주되었다. 상업과 농업이 성하고 예술이 발전했으며 다른 인종과 종교에 대한 관용으로 질서와 안정이 유지되었다. 1230년 술탄 알라 앗 딘 카이 쿠바드(카이코바드) 1세에 의해 유발된 화라즘 샤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룸 술탄국과 셀주크 권력의 분열을 가져왔다.

호레즘 완충국가의 상실로 몽골 세력이 투르크 변경지역에 도달했을 때 셀주크는 이들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1243년 쾨세다그 전투에서 패배해 셀주크 자치왕국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일부 투르크멘 아미르들이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에서 자신들의 소규모 공국을 유지해나갔으나 셀주크의 술탄국은 당분간 몽골의 속주로서 존속했다.

마침내 셀주크 왕조는 13세기초에 소멸했다.→ 터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