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우코스 왕국

셀레우코스 왕국

다른 표기 언어 Seleucid Kingdom

요약 가장 강성했을 때는 유럽에서 트라키아(트라케) 지방부터 인도 변경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제국(BC 312~64).

이 왕국의 창건자인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 제국에서 이 지역을 분리시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휘하 장군 중 한 사람이었던 셀레우코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지 2년 뒤인 BC 321년에 바빌로니아의 총독(Satrap)이 되었다. 해체되어가는 제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휘하 장군들이 지리한 권력투쟁을 벌일 때 셀레우코스는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로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안티고노스가 자신을 바빌로니아에서 추방했던 일이 있었으므로, 그에 대항하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를 도왔다.

BC 312년 셀레우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보내준 병력을 사용하여 가자에서 디미트리오스와 싸워서 이겼다. 그리고 같은 해에 얼마 안 되는 병력으로 바빌로니아를 장악하고 이곳에 셀레우코스 왕국을 건설했다. BC 305년부터 왕국의 힘을 키운 다음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까지, 서쪽으로는 시리아와 아나톨리아까지 세력을 넓혀갔다. 서쪽에서는 BC 301년 이프수스에서 안티고노스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BC 281년에는 케르소네소스 트라키아를 병합했다. 그러나 그는 같은 해 불만을 품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어 장남인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가 BC 261년까지 통치했으며, 안티오코스 2세(BC 246~225), 셀레우코스 3세(BC 225~223), 안티오코스 3세 대왕(BC 223~187)이 그 뒤를 이었다. 안티오코스 3세 대왕 때에는 철저한 행정개혁이 특징이었다.

그는 문관과 무관 사이의 경쟁으로 늘 긴장되어 있는 2중권력체제를 제거하고 이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체제에서 따온 여러 요소들을 근대화시켰다. 즉 문관과 무관의 권력을 통합한 각지의 지방관(Stratēgoi)들이 제국을 다스렸다. 서쪽은 사르디스가 동쪽은 셀레우키아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국은 아나톨리아와 그 휘하의 그리스 도시들을 지배함으로써 중동지역 전역에 막대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 사이의 헬레스폰토스,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사이를 지나는 전략요충지 타우루스의 통로를 장악함으로써 이 지역의 상업과 무역도 지배하게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시리아 정착지, 그중에서도 특히 안티오크는 왕국이 군사적·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중심지 역할을 했다.

셀레우코스 왕국은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서 중동의 토착문화보다 그리스 풍습과 관습들이 우세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전역사를 통해 보면 지배층은 주로 그리스어를 사용했던 마케도니아의 귀족계급 출신들이었고 도시지역이 특히 그러했다. 그리스 문화의 주도권에 대한 저항은 안티오코스 4세의 통치기간(BC 175~163)중에 절정에 달했다.

안티오코스 4세의 그리스 문화 증진책이 도를 넘어 예루살렘 신전에 제우스에게 바치는 조각상을 세우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행동은 BC 165년에 시작된 마카베인들의 봉기에 불씨를 당겼다. 이후 4반세기에 걸쳐 계속된 마카베인들의 저항으로 마침내 셀레우코스 왕국의 유대교도들에 대한 지배는 팔레스타인에 독립적인 유대 왕국을 창건함으로써 끝이 났다(마카베오가).

셀레우코스 왕국은 BC 3세기경이 되면서 광대한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잃기 시작했다.

BC 190년 처음으로 로마인들에게 패배한 뒤로 셀레우코스 왕국은 빠른 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에게 해의 그리스 도시들은 이미 셀레우코스의 명예를 벗어던졌으며, 카파도키아와 아탈리드 페르가몬이 독립했고, 다른 지역들도 켈트인들과 폰투스, 비트니아에게 빼앗겼다. 또 BC 3세기 중반경에는 파르티아·박트리아·소그디아나가 독립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코일레 시리아(레바논)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BC 200) 일시적이나마 아르메니아를 점령함으로써, 로마에게 빼앗겼던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어느 정도 확충했다.

그러나 안티오코스 4세가 죽고(BC 164) 시리아의 콤마게네와 팔레스타인의 유대 지역을 잃은 후부터 쇠퇴는 가속화했다. BC 141년경에는 유프라테스 강 동편지역 전부를 잃었고 디미트리오스 2세(BC 141)와 안티오코스 7세(BC 130)의 노력도 이 왕국의 급속한 해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BC 64년 마침내 로마인들에게 정복되었을 때는 이전의 강력했던 셀레우코스 제국은 시리아와 실리시아 동부지방에 한정되었으며, 그나마도 보잘것없는 지배력만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