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소스트리스 1세

세소스트리스 1세

다른 표기 언어 Sesostris I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이집트

요약 BC 20세기에 활동한 이집트의 왕(BC 1918~1875 재위).

10년 동안 아버지와 공동 섭정을 맡다가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집트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제12왕조를 세운 연로한 아버지 아메넴헤트 1세와 BC 1928년부터 공동으로 통치했으며, 아버지보다 더 막중한 업무를 맡았다. 그의 아버지가 국내 개혁을 완성하는 동안 그는 이집트 남쪽의 누비아 정복에 착수했으며 아버지의 재위 30년에는 서부사막에 있는 리비아에 원정을 갔다. 리비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오던 중 그는 아버지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왕위를 잇기 위해 군대를 이탈해 급히 수도로 돌아왔다. 거기서 세소스트리스는 아버지의 유언장 〈아메넴헤트의 지시 The Instructions of Amenemhet〉를 퍼뜨려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것은 아버지의 훌륭한 치적과 음모자들의 비열함을 강조한 동시에 세소스트리스의 왕위계승권을 재확인한 문서였다. 일단 권력이 안정되자 그는 누비아 정복을 계속 추진했다. 재위 18년에 엘레판티네(지금의 아스완)에 작전 기지를 설치해두고, 누비아를 철저히 예속시키는 한편 전략 요충지에 요새를 건설하고 수비대를 배치했다. 또 직접 엘레판티네의 지사를 임명하여 새 영토를 책임지도록 했다. 전쟁이 끝나자 누비아에 묻혀 있는 자원을 파내기 시작해 여러 지역에서 금·구리·자수정·섬록암 등을 캐냈는데, 원정대장과 조사관들이 세운 비문에 이집트인들의 다양한 활약상이 새겨져 있다. 국내적으로 세소스트리스는 아스완에 화강암 채석장과 상(上)이집트의 콥토스 동쪽 와디 함마마트에 금광·채석장을 만드는 한편, 활발하게 건설 계획을 추진해갔다. 재위 3년에는 카이로 근처의 헬리오폴리스에 주요성소를 재건했다. 테베에 카르나크의 복합 사원을 지어 이곳에서 아몬신의 사원 건축 및 경배가 꽃피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다녀온 사절이나 치안 관리들이 증명하듯이, 몇몇 서부의 오아시스를 자신의 관할 아래 두었다.

세소스트리스는 팔레스타인·시리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한 궁정관리가 지은 전기집 〈시누헤 이야기 The Story of Sinuhe〉에 따르면 그의 사절들이 아시아 지역을 넘나들며 외교적 압력을 넣으려 했지만 왕 자신은 아시아 영토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곳에서 전투를 치렀던 것 같다.

그는 파윰 북쪽, 수도 근처의 리시트에 있는 아버지의 사원 근처에 자신의 피라미드와 장제전(葬祭殿)을 지었다. 그곳의 건축양식은 제6왕조의 페피 2세의 복합 피라미드를 모방하여 고왕국 시대의 복고풍 전통을 되살린 것이었다. 재위 42년경에 아들 아메넴헤트를 공동 섭정자로 앉혔으며, 힘든 업무는 그의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2년 뒤 그는 길고도 영화롭던 정치를 마감하고 눈을 감았다.